가이아 이론 - 10점
막심 샤탕 지음, 이원복 옮김/소담출판사

'악의 삼부작'에서 브롤린이라는 매력적인 프로파일러를 통해 연쇄살인범의 탄생 원인 혹은 증가 이유, 그리고 그들의 심연에 대해 집요하게 파헤쳤던 막심 샤탕은 '가이아 이론'에서 이전 작품에서 명확하게 내리지 못한 결론에 대한 확고한 대답을 한다. '악의 삼부작'에서는 연쇄살인범이라는 악의 실체를 타고난 선천적인 본성이나 트라우마와 같은 후천적인 원인에서 찾기도 하고,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인간이 갖게된 더욱 많은 자유에서 원인을 찾기도 하는 등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살인범의 행동양식에 주목을 하면서 원인보다는 결과적인 양상을 더욱 깊게 사유했다. '가이아 이론'에서는 연쇄살인범의 탄생과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들이 증가한 원인을 인간 자체에 각인된 유전자와 그것의 진화, 그리고 이것들을 지구라는 유기체의 자기방어기제와 통합함으로써 좀 더 근원적인 이유를 파헤친다.

가이아 이론이란 지구를 무생물이 아닌 유기적인 생명체로 정의하고, 지구가 지구상에 뿌리 내린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조절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즉, 스스로의 면역체계를 발휘해서 병원균으로 인지된 생물체를 사멸하는 기능을 발동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소설에서 인간은 빠른 시기에 지구를 황폐화 시켜 지구의 면역체계를 on하였으며,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오염으로 인한 이상 기후 발생과 같은 기후 변화와 해빙으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 종 간의 치열한 다툼은 지구 역사에 있었던 대멸종의 징후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지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을 바이러스로 간주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개념이지만, 이 소설의 매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은 그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한 인류를 사멸시키는 메커니즘의 시작은 연쇄살인범의 출현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진화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지만, 결국 인간 진화의 최종 결과물은 연쇄살인범으로 귀결된다. 연쇄살인범이 인류의 미래다라는 다소 도발적이고 찌라시적인 이 소설의 선전문구는 과학적으로 도출된 명제이다. 그리고 연쇄살인범으로 진화를 유도하는 매개체로 작가는 욕망만을 부추기는 마케팅을 거론한다. 성과위주의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가지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도록 가르치는 마케팅 시스템에서 자라난 인간은 소유하기 위해서, 즉 욕망을 위해서는 어떤 짓이든 행할 수 있도록 이성과 도덕성을 망각한체 갖기 위한 포식 본능만이 일깨워지게 된다. 이렇게 도덕의 상실은 인간의 살인 본능을 일깨우고, 이런 공격성향으로 지구의 먹이사슬에서 최고의 위치를 갖게 된 인간은 역설적으로 그것 때문에 멸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 '가이아 이론'은 이렇게 철학적인 개념을 과학으로 증명하기 위해 인간 생체 실험도 불사하는 비윤리적인 기업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음모를 파헤치는 집단을 투입시켜 스릴러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낸 작품이다. 이전의 작품들도 마찬가지지만 막심 샤탕의 사전 조사도 방대하고 탄탄해서 독자가 공감하기에도 충분한 작품이고, 연쇄살인범이 득실거리는 고립된 섬의 잔혹한 풍경 묘사 또한 일품이다. 또한 악의 실체라고 규정했던 집단이 비윤리적이기는 하지만 무조건 나쁘게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입체적인 매력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연쇄살인범이 인류의 미래라면 과연 어떻게 이들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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