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댄스 댄스 1부 -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문학사상사 |
1. 얄미운 하루키씨. 하루키씨의 작품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설이 좋단 이야기다. 하루키 소설의 캐릭터들은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하루키 자신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게(당연하잖아?) 느껴지고 그런 성격은 내게 좀 얄밉게 느껴지기에 일상 속에 보여지는 캐릭터 보다는 비현실적인 공간인 소설 속에 놓여있는 쪽이 더 읽기 편하다.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나'라는 인물은 스스로 평범한 인물이라고 세뇌하듯이 타인에게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상은 아니다. 그는 일을 즐기지 않지만 돈을 쓸 겨를도 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며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시스템에 적응할 줄 아는 인간이고,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취해야할 예의를 매우 중시하는 인물이다. 즉 매우 사회적인 인물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온통 사회에 대한 반항과 불평불만으로 가득차 있다. 그렇지만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삶 자체를 즐기고 있는 듯도 보인다. 그의 생활방식은 모든 젊은이들이 동경해마지 않는 매우 쿨한 삶이다. 돈 걱정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일을 살아간다. 그것이 보통 사람이 모두 할 수 있는 것인양 얘기한다. '특별하지 않다'라고 대사로 독자와 동일시 시킨다. 하지만 그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그것을 초월한 인간이 사실은 그 시스템의 본질을 꿰뚫고 한껏 이용하면서도 '나는 그런점이 싫어!'라고 외치는 표리부동한 면이 얄밉다. 그는 현실세계에서 선택받은 비범한 소수자이다. 매일을 그렇게 편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흔치않고 산다고 하더라도 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렇지 않지가 않은 것이다.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자가 '사실은 난 평범해'라고 주변에서 얘기한다면 금속배트로 한대 쳐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백억 부자가 요즘은 돈이 너무 없어요라고 하면 생기는 얄미운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다. '나'라는 캐릭터는 '고혼다'가 아닌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얄미울 수 밖에 없다. 2. 그럼에도 이 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것은.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는 언제나 나에게 무언가의 출발점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 책이 읽고 싶어진다. 소설 속의 '나'가 키키를 찾아 과거의 어떤 매듭을 짖고 새출발(소년이 성장통을 겪듯이)을 하기 위해 수많은 사건속에 놓인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그들은 모두 과거의 인물들이거나 과거를 상기시키는 인물들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에 대한 많은 은유를 간직하고 있는 소설에서 과거는 죽음이나 다름없다. 입구와 출구. 한번 빠져나간 사람은 다시 들어올 수 없다.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을 하다 헤어지고나면 사실 상대방은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헤어짐과 죽음, 과거는 결국 동일한 단어다. 읽고나면 허무해 지고 상실감에 뒤덮여 버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 책에 손을 대개 하는 것은 그래도 '나'가 앞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과거에 대해 빚지고 있는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키고자하는 일종의 다짐을 느끼게 한달까. 이런 기분이 썩 좋진 않지만 그래도 읽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서 하루키씨가 다시 얄미워진다. 3. 책 속에서.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입구와 출구는 일방통행이어서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저 지나갔던 사람들을 추억하며 쓸쓸함을 안고 살아갈 뿐이다. 이런 인간의 마음과 가장 비슷한 것이 바로 이루카 호텔이다. 호텔이란 공간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스쳐지나는 공간일 뿐이다. 호텔 직원인 유미요시는 누군가 머물면 무서울것 같다고 말한다. 소통을 원하지만 자기로의 고독을 욕망하는 인간의 모순. 결국 이루카 호텔은 나 자신이자, 물리적으로 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현실과 환상의 통로이다. 그 속에 양사나이가 살고 있다. 양사나이가 있는 어두운 방은 자기 마음속의 빈방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안경 쓴 소녀는 원래 그곳으로 올 수 없었으나 우연히 그곳에 들어온다. 그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염한 암흑을 넘어서 말이다. 이 얼마나 은유적이면서 근사한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간다는 일은 그런 것이다. 짓눌릴만큼 무거운 어둠을 뚫고가는 용기를 넘어선 무모함. 댄스 댄스 댄스는 이런 소통의 감정을 물리적으로 호텔이라는 공간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전화국에서 일하는 헤어진 여자친구 등의 인물을 배치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풀어낸다. 4. 이미지 속에 살아가는 허구적인 인간상. '나'의 친구로 나오는 지적이며 섹시하고 매력적이고 게다가 매너까지 좋은 '고혼다'는 배우다. 그는 타고난 분위기를 포함한 그의 외모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하고 산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는 실생활이 연기가 되어버려 스스로의 참모습을 잃고만다. 진짜 영화 배우가 되고나서는 편안함을 느끼긴 하지만 지저분했던 결혼생활과 엔터테인먼트에 환멸을 느끼며 다시 자아에 고민하기 시작하고 외부에서 만들어낸 이미지와 자기 정체성의 괴리가 커짐에 따라 결국 죽음에 이른다. 우리는 현재 이미지의 세상속에 살아간다. 비단 TV나 영화 뿐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행동양식 자체가 어떤 이미지인 것이다. 그런 이미지는 자신의 내부에서 표출된 것이 아니라 외부로 부터 침입해 들어와 나를 둘러싼 것이다. 인간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이 물질화되고 이미지로 구현되는 사회. 그런 것이 사회화라는 것이고 현재의 지독한 세상이 아닐까. 상대방의 진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것보다 내부의 본질이 중요하다는 새삼스런 이야기는 고혼다를 통해 슬프게 다가온다. 5. 가슴을 아주. 하루키씨의 인물 묘사와 캐릭터 구축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간결하고 깨끗한 문장으로 묘사 자체가 가슴을 후벼파는 절절함을 느끼도록 한다. 어떤 삶의 철학이 아닌 인물이나 상황 묘사가 마음을 울리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댄스 댄스 댄스에서는 모든 문장이 그렇다. 딱히 뭘 하나 꺼집어내서 기억하고 싶다거나 하는 따위가 아니다. 그런짓은 애초 불가능하다. 게다가 숙명론 적인 그의 삶에 대한 자세는 치사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그런류의 것이다. 얄밉다. 6. 나는 다시. 무엇을 시작하고 싶지도 않고 끝내고 싶지도 않다. 지금 이대로. 그냥 살아갔으면 좋겠다. 과거의 매듭은 거기에 남아있고 그걸 묶기 위해 다시 돌아보고 싶지도 않다. 나 자신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도 알수없을만큼 빠르게 흘러가더라도 그냥 앞만 보며 살고 싶다. '댄스 댄스 댄스'의 책 앞머리를 들춰보는 일은 이제 없을 것 같다. 나도 그렇게 나이를 먹어버렸다. [그냥 몇마디 주절거리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왠지 스스로에 대한 변명조가 되어버려서 괜스레 길어졌다. 참 소모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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