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의 모든 OST를 사랑해마지 않지만, 공중파를 통해 많이 흘러나오던 winter story보다는 his smile을 더 좋아한다. 이와이 슌지의 모든 영화들이 그렇지만, 러브레터도 그리 단순한 감정선을 건드리는 영화는 아니다. 수많은 패러디를 낳으면 명장면 명예의 전당에 오른 '오겡끼데스까'는 죽어버린 연인을 그리워하는 외침일 뿐 아니라 사랑받지 못한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떨쳐버리기 위한 절규이며 자신의 껍데기만을 보아왔던 연인에 대한 아쉬움의 토로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리워하여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각인시키고자하는('아타시와 겡끼데스'라고...) 안쓰러움의 절정이다. 그러니까 결국 러브레터의 키워드는 사랑을 해보고도 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공허함과 좌절감이다.

와타나베 히로코는 사랑받지 못했고, 후지이 이츠키(여자)는 사랑을 하고도 알지 못했다. 이츠키는 히로코를 통해서 얼음속에 박제된 잠자리와 같았던 기억인 이츠키(남자)를 기억해 냈고, 기억 속에서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며 그와 함께한 추억이 소소했지만, 자신이 결코 잊지 못할 어떤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학창시절 선생님을 통해서 그의 죽음을 알게된다. 한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도 그와 함께 마음을 공유하지 못했고, 한 사람은 마음을 공유했지만 사랑인줄도 몰랐다. 그 사실은 둘 중 누구에게 더 가혹할까.

러브레터의 오프닝에 흘러나오는 his smile은 이렇게 그려진 영화의 사랑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눈덮인 언덕에 누워 눈을 꼭 감고 숨을 참으며 조난되어 죽어가던 연인을 회상하던 이츠키는 가쁜 숨을 토해내며 눈을 뜬다. 연인의 추모식이 열리는 묘지로 향하는 이츠키. 카메라는 멀리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이제는 볼 수 없는 '그의 미소'가 공허하게 울린다. 그리고 시작되는 오프닝 크레딧. 가장 좋아하는 오프닝 중에 하나이다.



제목: 러브레터 (1995)
감독: 이와이 슌지
배우: 나카야마 미호, 카시와바라 타카시, 사카이 미키, 토요카와 에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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