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고립된 섬 혹은 가부장적인 시스템에서 착취당하는 여인의 삶을 주변인 (도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원시적으로 보이는 그곳과 화려한 도시가 별반 다를 바 없음을, 그러니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으니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나의 주체성을 찾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단호히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의 영화다.

[섬을 유지하는 시스템]
이 섬에는 어디에나 있는 왕따 메커니즘이 최대한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변인에 대한 묘사가 디테일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섬의 질서를 담당하고 있는 대장이라고 표현할 만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복남의 시어머니의 눈 밖에 날까봐, 그러니까 또다른 착취 혹은 차별의 대상이 될까봐 가해자의 편에 선다. 왕따가 되기 보다는 왕따를 시키는 것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손쉬운 방법이기에 그들은 복남의 편에 서지 않는다. 대개의 왕따 시스템은 그런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한번 착취자의 시스템에 가담해 버리면 반대편에 손을 내밀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법이다. 양심이라는 것도 점점 엷어지는 것이고. 또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벌어지는 학대의 현장이기에 아마도 복남의 처지에 침묵하는 그들도 과거에는 남자들 혹은 시어머니라는 질서로 부터 착취를 당했을거라는 것도 쉬이 짐작해볼 수 있다. 어쨋거나 '섬에는 남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 한마디에 모두들 꼼짝도 못하니까. 따라서 착취를 당해본 자이기에 착취 당한자의 편에 서기 보다는 착취자의 편에 서는 길을 택한다.


[해원과 복남의 어이없는 대결]
해원과 복남이 대결하는 종반부는 다들 지적하듯 생뚱맞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하는 것이, 해원은 섬의 대다수 주민들이 그러했듯이 방관자 역할이고, 복남은 피착취자 역할이었다. 복남은 본인의 복수를 행하는 것이기에 섬 전체를 둘러싼 시스템화 되어 있는 폭력을 깨부술 의지가 발현될 개연성이 있었다면, 방관자는 오히려 방관자이기에 그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동기부여가 적을 수도 있다. 어쩌면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해원이라는 방관자가 폭력에 대한 방관자가 아닌 주체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친구를 죽이고 나서야 깨달을 만큼) 더 큰 고난을 필요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착취 당하는 자들의 홀로서기]
동네 사람들의 무관심 혹은 남자 없음에 대한 두려움, 방관에 의해서 복남의 인생은 유린되고 착취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녀는 그다지 무기력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시동생에 의한 성적 착취에 대해 체념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살아가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녀가 자신이 그어놓은 임계점 (딸아이에 대한 착취)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단호하게 행동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딸아이에 대한 묘사였다.  집단 강간의 잉태로 태어난 딸아이, 의붓아버지는 아이를 성적으로 착취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아이는 의붓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러나 엄마를 배신할 것 같았던 여자 아이는 (그녀가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어함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아이란 대개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존재가 아니던가) 자신의 욕망보다는 매일 성적으로 갈취당하고 폭력으로 학대당하는 엄마를 탈출 시켜야 한다는 여성으로서의 이성적인 연대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섬 사람들의 착취에 폭발한 복남의 대학살에 대한 결과물로 도시 여인은 폭력에 지지않고 홀로서는 방법을 터득한다. 공권력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 유린당하는 자들의 홀로서기는 굉장히 중요하다. 밟힌 지렁이가 꿈틀해야 밟은 사람도 거기 지렁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에필로그 격으로 실린 경찰서 장면에서 살인자를 지목한 뒤 피의자가 자신을 구타하려하자 재빨리 볼펜을 들고 볼펜심을 누르는 여인의 손에서 복남의 섬 몰살 풍경만큼이나 강인함과 통렬함을 느끼게 한다.

[복수의 대리자가 아닌 주체자]
악마를 보았다류의 여타 복수 영화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수십년 동안 학대를 받은 그 자신이 복수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녀는 살해당한 여인네의 힘있는 남자친구라거나 아버지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복수를 자신이 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복수를 행하는 주체가 대리자일 경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보다는 저들의 복수가 윤리적으로 옳은가라는 또다른 물음이 끼어들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의 억울함이 그 당사자라고 해서 살인으로 해결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김복남 살인사건은 좀 더 우직하고, 좀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덧붙여.
-. 서영희가 아이를 잃고 오열하는 장면이나 그 분노를 가슴으로 끓여내면서 사람들 묻을 땅을 만들려고 감자를 캐는 장면의 서늘함과 찌는 태양만큼이나 이글이글 불타는 긴장감은 정말 대단했던 것 같다.

-. 해외에서 김복남 블루레이 출시소식이 들려오는데 국내 영화를 해외에서 주문해야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귀찮기도 하고.

제목: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Bedevilled, 2010)
감독: 장철수
배우: 서영희, 지성원, 백수련, 박정학,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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