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 하나 평등한 것이 없는 작금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만인에게 평등한 것은 죽음이다. 또한 죽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공포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 그리고 공포영화나 문학은 그것을 파헤친다. 그래서 그것이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다.

영화나 소설은 자신의 잠자는 영혼을 일깨우는 예고편이다. - Masters of horror "Cigarette bu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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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 라섹 등등.

Record? 2010. 10. 18. 13:49

-. 중2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대략 20년 정도 쓴 셈이다. 본래 겁이 많아서 시력교정술 따위는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만에 하나 부작용으로 인해 볼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다가오는 공포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다수의 겁쟁이들이 얘기하듯 나 또한 정말 안전하다면 안과의사들은 왜 시력교정술을 받지 않는거냐라고 생각하며 부작용에 대한 임상자료의 부족함을 근거로 나는 절대 받을 수 없을거야라고 생각하던 터였다. 그러던 것이 마눌님께서 어느날 '오빠, 라섹하고 싶으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하시오. 아이가 태어나면 돈이 분명히 쪼들릴터이니 그 전에 한다면 시켜 주리다.'라는 한마디에 수년동안 생각해온 공포는 순식간에 날아가버리고 바로 병원가서 검사하고 그 다음주에 수술을 해버렸다. 회사에 라섹을 한 후배들이 많아서 수술을 기다리는 일주일동안 이러저러한 조언을 많이 받았는데, 대략 요약하자면 '수술하고 오면 진통제 먹고 푹 자라, 첫째날은 통증이 좀 있지만, 하루 지나면 그럭저럭 생활은 가능하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시력이 거의 돌아온다'였다. 그래서 별 걱정없이 수술을 했더니만, 왠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도 눈이 떠지지 않는다. 좀 걱정이 됐지만, 하루를 더 잤다. 눈이 떠지지 않는다. 아... 슬슬 좀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하루를 더 잤다. 이런 젠장 아직도 눈이 안 떠진다. 오늘 밤까지 눈이 안 떠지면 내일은 병원가야지 생각했더니, 다행히 저녁에는 가까스로 눈을 뜰 수 있었다. 수술 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 촛점이 좀 안 맞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볼 수 있게 됐다. 안경을 쓰지 않고도 볼 수 있으니 밤에 자기전에 안경을 벗을 필요가 없다는게 제일 좋다. 아무튼 부작용이 없기를 진심으로 기도~.

-. 라섹을 하고 한달동안 금주 해야한다는 의사의 조언을 듣고 수술전날 소주를 실컷 먹었지만, 소용이 없다. 아~ 맥주 먹고 싶어.

-. 금주를 하는 김에 금연도 해 볼까라는 기특한 생각을 하고는 현재 11일째 금연을 하고 있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좋은 것이 참 많다. 손가락에서 냄새도 나지 않고, 저녁에 집에 돌아갈 때가 되어서도 옷에서 담배냄새가 나지 않는다. 집에 가서 마눌님께 뽀뽀해도 담배냄새난다며 손사래 치지도 않는다. 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를 넣지 않아도 되니까 바지가 가볍다. 한값에 2,500원씩하는 담배를 살 필요가 없다. 담배가 떨어져서 회사에서 담배피우는 누군가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길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나 때문에 피해볼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 심장이 콕콕 찌르던 느낌도 없어졌다. 조금 빨리 걸어도 그다지 숨이 차지 않는다.  대충 생각해도 좋은 점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금연이란 참 좋은 것이다. 금연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정도랄까? 흑흑. 그런데 그 단점의 크기가 너무너무나 크다.

-. 어울리지 않게 성균관스캔들을 굉장히 재미있게 보고 있다. 구용화 캐릭터에 반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이녀석의 캐릭터가 처음보다 많이 약해져서 아쉬워 하고 있다. 당파의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둘 모두와 적극적으로 교류를 하고,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모사꾼으로서의 면모를 톡톡히 발휘하고 그 둘이 망했을 때 자신은 어떤 피해도 보지 않을 그런 캐릭터였는데 이 녀석이 능글맞음과 카리스마를 버리고 한쪽으로 기울어버리니 뭔가 상당히 아쉽다. 어쨋거나 오늘은 성균관스캔들 하는 날이다. 호호.

-. 가끔 밤에 산책을 하다보면 혼자서 귀가하는 여중/여고생들을 보게된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뭐랄까 상당히 불안하다. 제발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생각들. 성범죄에 대해 유난히 관대한 우리나라에 살고 있으니... 언제쯤 속시원한 판결을 들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모두 범죄의 판결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으니 이런 시대적 공기를 반영해서 아저씨나 악마를 보았다류의 자경단 식의 복수영화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악마를 보았다를 볼 때 느꼈지만, 이 영화의 잔혹함에 대해 영향을 받을 누군가를 걱정한다면 그것은 아주 소수의 잠재적인 사이코패스들이 아니라 복수에 대한 쾌감을 느끼고 있는 대다수의 관객이 아닐까싶다. 강한 처벌이 범죄율을 낮추지 못한다라는 통계를 근거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고는 하는데, 강한 처벌이 범죄율을 낮추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남은 피해자 가족이 담고 있을 한푼 정도의 응어리라도 풀어줄 수 있다면 그것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분노를 부러 키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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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는 황량하다. 슈퍼마켓을 찍어도 황량하고, 아기자기한 골목을 찍어도 황량하고, 예쁜 그릇들이 놓여있는 부엌 선반을 찍어도 황량하고, 아름드리 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도로변을 찍어도 황량하고 하여튼 황량하다. 그리고 그 공간에 서있는 누군가는 무척 외로워 보인다. 웃고 있어도 외로워 보이고, 누군가와 함께 있음에도 외로워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유령처럼 보인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쿄 소나타는 평범해 보이는 가족의 구성원들이 저마다의 비밀(불만/불안)을 하나씩 껴안고 있다가 저마다의 사건들로 인해 자유로운(혹은 무질서한) 세계를 경험한 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새롭게 출발한다는 비교적 단순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영화다. 강령, 큐어, 회로, 로프트, 절규 같은 걸출한 공포영화들을 줄줄이 만들어낸 감독이 이제는 공포가 아닌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 과연 어떤 영화가 나올까 궁금했는데 역시 그다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공포라는 장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이 뭘까라는 고민 끝에 가족 이야기를 생각했다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니 영화 도쿄 소나타의 공간은 그의 여느 영화들처럼 황량해 보이고, 인물들은 외로워 보이며, 그들은 유령같아 보인다.

중년의 가장은 평생 몸담았던 부서가 중국으로 이전됨에 따라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가족에게는 비밀로 하고 공원으로 매일 출근을 하며, 노숙자들과 함께 무료급식으로 하루를 견딘다. 아키하바라에서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던 큰아들은 일본에서 딱히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없었지만 평화를 지킨다는 거창한 이유로 미군에 입대하여 중동에 참전하게 된다. 막내 아들은 피아노를 배우고 싶지만, 권위적인 아버지는 반대한다. 대화가 단절된 가족들 사이에서 어머니는 그들을 이으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은 텅빈 껍데기라고 느끼며 살아간다.

이 진부하고 평범해 보이는 내용을 기요시는 기가 막히게 연출해낸다. 세월을 두고 하나하나 쌓여왔던 불만들이 커짐에 따라 인간의 내면은 붕괴되고 그 자신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하게 된다. 마음이 부서지고 그 자리에 스멀스멀 공포가 끼어드는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도쿄 소나타는 그래서 어떤 공포영화 보다 무섭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쫓겨난 친구의 집에 초대된 남자에게 친구의 딸이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이 '아저씨도 고생이 많네요'라며 숨는 장면이나 엄마의 꿈에 나타난 큰아들이 '난 많은 사람을 죽였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남편과 얘기하며 쇼파에 누워 천장으로 손을 뻗어 '누가 나를 좀 일으켜줬으면 좋겠다'라고 독백을 하는 아내의 모습 등은 그들이 분명 살아있는 인감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죽어있는 유령처럼 보이게 한다. 뺑소니를 당했다가 길가에 쓰러져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아침에 불현듯 눈을 뜨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종반부를 보면 이 영화가 분명 희망적인 결말을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희망이 마치 사후 세계에 있는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어서 상당히 불길하게 보인다.



아들의 피아노 연주가 끝난 마지막 장면은 분명 이 가족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감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다. 큰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아버지는 권위를 잃었다. 엄마는 아내나 엄마로서가 아니라 여자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들은 적어도 가족이 문제가 있음을 모두 공유하고 인정했다. 그러니 정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이해하면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길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시험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유령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게 뭐랄까 상당히 따뜻한 감정을 보이고 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욱 소름끼친다.

한마디로 도쿄 소나타는 그의 여느 영화들처럼 평범한 사물, 인물, 공간을 가지고 현대인이 떨치기 힘든 불안감을 묘사하는 괴상한 매력이 가득찬 영화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들은 정말 완소다.

덧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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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는 직장과 같은 집단에서도 사람들은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가족이라는 집단은 그 역할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집단이다. 한 남자, 여자의 남편과 아내로 시작했지만, 아기의 부모가 되어야 하고, 학부형이 되어야 하고, 그 자식을 또 품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을 할당받아야 한다. 아무도 자기의 역할을 어떻게 할지 모른다. 정답이라는 것이 없으니까. 그러므로 권위를 내세우게 되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불협화음의 시작이 되는 것 같다. 기요시의 영화는 참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그래서 좋다.

-. 뺑소니 당한 후의 남편이 유령처럼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그는 줏은 돈을 우체통에 넣는다. 돈을 우체통에 넣는 것은 그가 돈을 취하면 불법을 행하는 것이므로 모든 것을 다 바닥난 제로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없게 된다. 어쨋든 타인의 돈을 취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불법을 행하면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가 없게 되고 오히려 또다른 나쁜 미래의 출발점을 만들게 되므로 그는 돈을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이 이 남자의 희망적인 미래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이의 선생님은 자신이 상처 입을까봐 아이에게 다가서지 않고 다가오지 말라고 선언을 한다. 그게 너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다라며. 인성이 사라진 사회의 단면이랄까. 아무튼 이 영화는 일상 속에 존재하는 섬뜩함이 칼날처럼 빛을 발한다.

제목: 도쿄 소나타 (Tokyo sonata, 2008)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배우: 카가와 테루유키, 코이즈미 쿄코, 코야나기 유, 카이 이노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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