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 10점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이미지박스
타카라지마사(宝島社)를 포함한 세개의 출판사가 주최하는 '이 미스테리가 대단하다(このミステリーがすごい!)' 2007년도 대상 수상작인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미스테리라기 보다는 공포소설이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이 상이 추리에 비중을 두는지 공포에 비중을 두는지 언급이 없고 2007년도 결과가 아직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아 심사관들의 생각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이 작품 참 재미있다. 근래에 읽어본 소설중 신체훼손 묘사에 있어 가장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작품이었고, 최근의 단편집 중 제일 흥미롭게 읽었다.

한 작가의 단편집이라고 해도 모든 단편이 공포라기 보다는 말랑말랑한 작품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고 한가지 설정에 집착해서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어 놓은 듯한 인상을 받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단편집의 경우 모든 작품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폭력성과 광기에 촛점을 맞추고 있고 힘의 우위에 따라 위치가 변할 뿐 악인만이 등장한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심지어 지도조차 나쁘다.) 소재 자체는 가정폭력과 이지메, 연쇄살인범과 고문기술자, 시체를 먹어치우는 괴물 등 그닥 새로울 것도 없지만 평범한 소재를 비범하게 끌어올리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 '오퍼런트의 초상'이나 '끔찍한 열대'는 영화 이퀼리브리엄이나 지옥의 묵시록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막상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은 피부를 벗겨내거나 사지절단 같은 고어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어는 인간을 통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거나(오퍼런트의 초상) 폭력의 전이 (끔찍한 열대, 니코틴과 소년, 오메가의 성찬,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을 보여준다거나 폭력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괴물같은 얼굴을 한 여자와 녹은 시계 같은 머리의 남자)는 주제를 부각시키며 피의 향연을 펼친다.

앎의 욕구를 버리지 못하고 시체를 먹어치우는 괴물이 되는 '오메가의 초상'에선 사체 토막과 식인 행위가 우아하게 펼쳐지며, 가정 폭력의 주체인 새아버지와 방관자인 어머니를 처단하기 위해 연쇄살인범을 찾아다니는 '소녀의 기도'는 우울한 결말이지만 실로 통쾌했으며, 발가락과 손가락을 망치로 짓이기고 가위로 자르고, 피부에 못을 박고 못을 달궈 고통을 배가 시키고, 잘려진 절단면을 토치로 지지고 그도 모자라 비강을 통해 뇌를 파내는 묘사가 일품인 '괴물 같은 얼굴을 한 여자와~'가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으로 가장 재미있었다. 고문을 하고 휴식을 취하는 동안 꾸는 꿈과 고문 행위가 교차되어 보여지는 이 작품은 피가 부글부글 끓는 듯한 초현실적인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단순히 잔인하다고만 해서 절대로 재미있는 작품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히라야마 유메아키는 잔혹한 고어를 이야기로 풀어낼 줄 아는 작가다. 주로 괴담을 수집한 작품을 발표했다고 하는데 이 작가의 다른 공포소설도 얼른 출간이 되길 바란다. 강추.

첨언.
-. 얼마전 오츠 이치의 'GOTH'가 반인륜적이라는 이유로 19금 조치도 아닌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져 서점에서 수거가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제 정말 거꾸로 돌아가는가 싶다. 제대로 된 잣대도 없이 애매한 조치를 취하는 간행물윤리위원회 따위는 그냥 없어져도 되지 싶다. 이런 식이라면 이 소설도 조만간 판금조치가 내려질까 걱정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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