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개인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주변의 불행을 이해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몸에 새겨지는 주름을 그려가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을 수용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계속 반복된다. 육체적인 나이를 거꾸로 먹는 벤자민 버튼은 그의 유년기에는 겉모습으로 인해 세상을 좀 더 진지하게 배웠고 노년기에는 그의 정신으로 인해 세상을 좀 더 쉽게 받아 들일 수 있었다. 나이를 거꾸로 먹어도 (육체적인 팽팽함을 인생의 황금기라고 한다면) 인생의 황금기는 한번 뿐이고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역시 공평하게 찾아온다. 벤자민의 존재를 고통이라 여기고 내버렸던 부모도 죽음전에야 비로소 그를 받아들인다.
그것이 행복이었든 고통이었든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수용할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해 질 수 있다라는 얘기는 데이지를 통해 또한번 강조된다.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를 읊으며 그녀가 사고를 당하기까지의 과정을 코믹하면서도 재기발랄한 범죄영화의 한장면처럼 보여주는 이유도 역시 후회하기 보다는 한걸음 더 딛으라는 착한 교훈을 담고 있다.
시계공이 죽은 아들을 살려내는 마음으로 만든 거꾸로 가는 시계가 작동하면서 전쟁의 장면이 리와인드 되며 죽은 병사들이 살아나는 장면과 해상 전투씬은 짧지만 임팩트가 매우 강했다. 화면으로 레이저처럼 날아드는 총알이라니. 짧지만 망망대해에서 느끼는 전쟁의 공포감과 망망대해이기 때문에 전쟁의 허무함이 더 잘 드러난다.
태양은 가득히나 지상에서 영원으로 같은 고전 영화들을 패러디하는 장면도 간간히 등장하여 호홋할 수 있는 재미도 있었고, 반지의 제왕을 능가하는 감쪽같은 노인분장 효과는 굉장했으며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좀 더 짧았으면 외려 더 간결하여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대작이 아니었을 이야기를 굳이 대작으로 만들어버린 꿍꿍이가 조금 얄밉게 느껴지기도 하고.
첨언
-. 나는 줄리아 오몬드를 참 싫어했다. 그녀가 삼형제를 찢어놓을만큼 절세미인이라 생각한 적이 없어 가을의 전설에서의 역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사브리나를 했을 때 '음, 이 양반은 왜이리 어울리지 않게 너무 예쁜 역할로만 나가는걸까'라고 등을 돌렸다고나할까.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이든 여배우들이(남자배우들도 그렇고) 주름을 드리우고 스크린에 등장하면 그러니까 힘을 조금 빼면 독특한 아우라가 펼쳐지는 것 같다. 일반인과 다른 점이라고나할까.
-. 졸리를 싫어하여 피트가 졸리와 만나고 나서는 피트의 영화를 재미있게 본 적이 한번도 없다. 왠지 매력도 없어 보이고. 난 싫은게 왜이리 많은지 몰라. 벤자민 버튼을 재미있게 본 것은 그러니 피트의 매력이라기 보다는 핀처의 힘이다.
감독: 데이빗 핀처
배우: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줄리아 오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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