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19세기말 영국에서 일어난 매춘부 연쇄살인사건. 잭 더 리퍼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살인사건은 국내의 화성부녀자 살인사건처럼 미해결로 남아있다. 영화 프롬헬을 지배하고 있는 묵직한 공기는 살인의 추억과 비슷하다. 미해결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소재외에도 살인을 일으킨 피의자가 있기 전에 그런 살인범이 발생하도록 혹은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게끔 조작 혹은 변질 되어진 사회적인 상황에 힘을 두고 있는 것이 말이다.

프롬헬은 잭 더 리퍼를 둘러싼 여러가지 가설 중에 영국왕실의 음모론을 기본 골격으로 발전시킨 영화다. 어느범위까지 사실인지 알아내는 것은 음모이론이니 의미없는 짓일테고 영화가 밝힐 수 없는 혹은 잡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무한도전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일테다. 이 또한 집단권력에 대한 무력감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는 암울한 현실확인일 뿐이지만 말이다.

프롬헬은 살인범이 밝혀지기까지 살인장면을 몽환적으로 다루고 그것을 추적하는 검사관조차 사건 수사를 아편의 힘을 빌려 영감 수사를 한다. 과학적인 사실이 거대 비밀 조직에 의해 거부되어진 사회에서 개인이 기댈 수 있는 곳이 아편을 통한 현실 도피라는 영화의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거대 권력은 공포(연쇄살인)를 통해 시민을 통제하고, 각성해야할 개인들은 술과 마약을 통해 현실을 외면한다. 결국 프롬헬은 잭 더 리퍼가 보낸 편지의 'from hell'이라는 문구처럼 거대권력은 스스로 지옥의 악마임을 숨기지 않으며 아편을 빨다가 여인이 살아있을거란 환각속에서 죽은 검사관 캐릭터에서 드러나듯 현실은 달콤한 왕자님이 살기에는 버겁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국, 유대인, 구두쇠, 비밀 조직이라는 키워드가 연속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눈치빠른 사람이면 살인범의 정체가 어떤 조직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중반부까지의 어두컴컴한 영국 뒷골목의 인물들이 살아있는 유령처럼 부유하는 분위기가 굉장히 좋다. 이렇게 흐릿하게 진행되는 영화가 살인범이 밝혀지자 조금 맥이 빠져버리는 것은 그 살인범이 너무 뻔뻔하게 '악마' 그 자체로 평면적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프롬헬은 잭 더 리퍼를 다룬 영화중 가장 재미있는 영화가 아닐까 한다.

제목: 프롬헬 (From Hell, 2001)
감독: 알버트/알렌 휴즈
배우: 죠니뎁, 헤더 그레이엄, 이안 홈, 로비 콜트레인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