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에 이르는 병살육에 이르는 병 - 10점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시공사
반전이 뒤통수를 후려친다는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은 개인적으로 반전에 대해서는 크게 감흥이 없는 사람인지라 마지막 책장을 덮고서도 '아~ 그랬구나' 정도의 여운이었다. 한 문장으로 전체의 이야기를 거꾸로 뒤집어 엎어버리는 것은 절약적이고도 대단하다고 생각되지만, 어차피 그런 범죄를 저지른 대상이 누구냐이기 보다는 어떻게, 이렇게 잔인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인물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읽으면서 가끔씩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가슴속에 떠올라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당연하겠지만, 모든 범죄장면에서 그랬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정도로 변태는 아니거든요.)

살육에 이르는 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사랑에 대한 육체적/감정적 불구자들이다. 끔찍한 페티쉬 취향의 네크로필리아인 미노루가 그렇고, 언니의 모든 것을 빼앗는 것에만 집착하는 가오루가 그렇고, 자신을 돌봐주는 여인을 죽게만들어 죄책감에 시달리는 퇴직형사인 히구치가 그렇다. 심지어 범죄자의 엄마로 등장하는 마사코 또한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며 그저 자신의 현재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그런 그녀의 모습은 자식의 방 쓰레기통에서 정액이 묻은 휴지수를 헤아리는, 가정에 대해 비정상적인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여자로 그려진다. 사랑이 없는 가정인데도 말이다.

미노루가 정상적인 사랑을 못하고 살인을 하여 시간을 행하는, 그것도 성행위를 하는 도중에 살해하여 죽음으로 인해 수축하는 여성의 성기에서 또다른 행복감을 찾아내고 그것도 모자라 그런 엑스터시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비디오로 찍고 유방과 자궁을 도려내서 신체부위를 들고 자위하며 그 순간을 영원토록 곱씹어 보고자 하는 진짜 엽기적인 행동들은 모두 사랑에서 비롯된다. 미노루는 엄마에 대한 근친상간적 성적 욕망에서 비롯된 호기심섞인 반쪽자리 사랑의 감정과 그런 감정도 모르고 있던 상태에서 부모에게 들켜버린 무지의 수치심이 트라우마로 새겨져 비정상적인 어른이 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진짜 사랑할 상대를 찾아나서는 그의 모습은 다른 범죄자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그가 저지르는 살인의 잔혹성은 살인의 횟수가 증가할수록 생명에 대한 감각이 무뎌짐에 비례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에 비례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시점에서 이미 사라져버리기 시작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시간에 비례하여 모래시계 반대편에 위치한 '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쌓여가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사랑에 대한 공포감이 이 소설에서는 극단적인 신체훼손으로 대비되어 그려진다. 이런 비정상적인 사랑의 행태는 범인을 쫓는 가오루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녀는 평생 언니의 것이 탐이나서 결국 언니의 남편과 잠자리를 하기까지 해서 형부를 빼앗지만, 결국 그 남자를 사랑하지 못한다. 제대로된 사랑의 감정을 가지지 못하는 가오루 캐릭터는 결국 마지막에 언니가 사랑했던 또다른 남자 히구치를 좋아하게 되지만, 결국 자신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지독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이 가오루라는 캐릭터는 살인마 미노루의 또다른 변형이라고까지 생각된다.

다 읽고 광고처럼 정말 책의 앞장을 다시 펼치게 되는 반전의 힘을 어느정도 느끼기도 했지만, 이 소설의 잔혹함에 대해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면-그럴수는 없겠지만- 살육에 이르는 병은 지독한 사랑이야기다. 현대 사회에서 친절하고 자상한 외형을 하고 괴물같은 마음을 숨기고 사는 정신병이 살육에 이르는 병이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열병만큼이나 살육에 이르는 병이 또 있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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