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의 아들 페르세우스의 영웅담인 영화 타이탄은 그리스 신화를 살짝 꼬아서 신과 인간의 대결 구도를 취하여 신의 횡포에서 벗어나 인간들의 왕국을 만들려고 하는 욕심을 부려보는 영화지만, 결국 신은 신이요, 인간은 인간이다라는 다소 허망하고 무력한 결말에 이르는 영화다. 하데스에게 양부모와 동생을 잃은 페르세우스는 신에게 분노하고 복수를 다짐한다. 신 제우스와 인간인 다나에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인 자신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고 제우스의 도움을 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없다라는 완강한 자세로 거부하며 자신은 끝까지 인간으로서 신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다짐이 얼마나 완고한지 제우스가 내린 신검을 사용하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을 적들도 그의 고집으로 인해 주변의 동료들이 죽어나감에도 끝까지 신검을 손에 들지 않는다. 그러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이오가 죽음에 이르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신검을 손에 든다. 이후로 그의 행적은 내가 언제 인간으로서 이기고자 했는지를 망각하고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을 누비며 메두사의 목을 들고 크라켄을 처치한다. 영화 마지막에 씽긋 웃어보이기까지하며 제우스가 내린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도 하고. 애초에 민초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전복을 노렸지만, 결국 권위와 힘에 기대지 않고서는 아래에서 부터의 봉기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철저한 패배의식이 담겨 있는 영화라고나 할까. 그래서 페르세우스의 영웅담이고 신나는 해피엔딩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당혹감을 심어준다.

상하의 전복이라는 욕심을 품었던 반신반인 캐릭터로 오락 영화에 진중한 무게감을 실어볼까 했던 욕심은 영화 스타일처럼 후반에 가볍게 묻혀 버렸다. 루이스 리터리어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아니니까. 아무튼 내용 자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롤러 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보는 오락 영화로서 본다면 그다지 나쁘진 않다. 무엇보다 거대 전갈이나, 메두사, 크라켄 같은 크리쳐들의 모습을 유려한 CG로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게다가 하데스의 역동적인 공격까지 더해서 말이다. 킬링 타임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구태여 사용한다면 킬링 타임용으로서는 전혀 손색이 없는 영화라 해도 틀리지 않을 듯 하다.

덧붙여.
-. 샘 워딩턴은 비슷한 이미지를 단시간에 너무 많이 소모하는 것은 아닐까. 터미네이터4와 아바타, 타이탄까지 전부 동일 캐릭터라고 해도 믿을 듯 하다. 게다가 머리 스타일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눈에 확 뛰는 스타는 아닌데 어디에 넣어놔도 왠지 튀지 않고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한다. 은근히 목소리도 매력적이고.

-. 다나에에게 난봉꾼 제우스가 황금비로 내려와 페르세우스를 잉태하는 장면은 클림트의 그림 다나에로 유명한데 영화에서 이 장면을 멋지게 만들순 없을까 궁금. 혹시 그런 영화가 있다면 제보를 받습니다.

-. 타이탄은 1981년 영화인 타이탄족의 멸망을 리메이크한 영화다. 래리 하우젠의 스톱모션이 빛을 발했던 원작에서 메두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꽤나 섬찟 했던 기억이 있다. 어릴때 봐서 그런가 몰라도. 그런데 메두사라는 존재 자체가 굉장히 무시무시하지 않나. 타이탄의 액션은 신명나고 활기차지만,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좀 아쉬웠다. 원작의 공포스런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수용했으면 좀 더 멋진 영화가 됐을텐데.

-. 안드로메다라는 이름이 나오자 나말고도 킥킥 거리는 관객들이 꽤 있더라. 모두 같은 생각 한거임.

제목: 타이탄 (Clash of the Titans, 2010)
감독: 루이스 리터리어
배우: 샘 워딩턴, 리암니슨, 랄프 파인즈, 알렉사 다바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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