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라는 영화를 보다가 도대체 왜 사랑하는 사람과 살지 않는걸까라는 항상 품는 의문이 다시금 떠올랐다. 영화 속의 두 커플은 아마 결혼 이전부터 그다지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을거다. 어느 한쪽은 사랑했는지 몰라도.. 후자의 경우라면 사랑하지 않고 결혼한 사람에 대해서는 왜 그런 결정을 내리는가에 대한 의문 내지는 이해불가의 감정이 떠오른다.

엄정화는 자신의 일에서 오는 불만과 그 불만으로 인해 돈 많은 이동건에게 끌린다. 그리고 돈 없는 남편에게 화풀이를 한다. 결국 이동건과 잠자리까지 가는데 이 과정이 불쾌하기 짝이 없다. 스스로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엄정화는 자신의 성적인 욕망 때문에 이동건과 잠자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가 그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결국 돈이다. 뭐랄까 이 대목을 보면서 돈에 대한 욕망 때문에 잠자리까지 오게된 것이 이건 그녀 스스로의 성적 욕망의 표출일 뿐이라고 합리화하는 영화의 태도 때문에 상당히 불쾌해서 결국 끝까지 보지 못하고 영화를 꺼버렸다. 고로 이 글은 이 영화에 대한 글은 아니다. 끝까지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더 하겠는가. 다만 시작부터 상대편의 배우자에게 호감을 갖는 이 두 부부를 보면서 서두에도 말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왜 살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나온 포스트인 것이다.

회사에 들어오고나서 나와 술자리를 한 모든 선배들에게 물어보았다. '정말 사랑하셔서 결혼하셨어요?'라고. 지금까지 대략 80명 정도의 n수를 획득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에 '응. 정말 사랑해서 결혼했어.'라고 대답한 사람은 매우 애석하지만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면서 항상 나에게 '너는 왜 결혼하지 않느냐'라고 핀잔을 준다. 그럼 나는 '왜 결혼해야 하는데요?'라는 반문한다. 그러면 그들은 보통 '나이가 들었으면 결혼을 해야지' 내지는 '나이들어서 애 낳으면 고생한다'내지는 '남자는 빨리 결혼해야 안정적이 된다'등등의 얘기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결혼할 나이가 됐고, 애를 낳고 싶었고, 안정적이 되고 싶어서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들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이고...

어느 술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결혼할 나이가 돼서 하기도 싫고, 애를 낳고 싶어서 하기도 싫고, 안정적이 되고 싶어서 하기도 싫고, 그냥 지금 너무 외로워서 하기도 싫고, 몇년 사귀었으니까 하기도 싫고, 부모님 걱정하시니까 하기도 싫다. 너무 사랑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할 거다.

그러고 나서 들은 대답은 철이 덜 들었네, 아직 순진한 구석이 있네, 세상 물정을 아직도 몰라, 조건 맞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하는 거다라는 빤한 대답이었다. 난 이게 참 싫다. 그냥 조건 맞으면 결혼하는건가. 그렇게 결혼해서 살면 행복한가. 앞의 대답들이 맞는 얘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되는거 아닐까? 사랑해서 결혼해도 여러가지 상황 때문에 이혼하고 갈라서는 커플들도 많다. 사람들은 이런 얘기도 한다. 너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보다 적당히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오래오래 잘 살 수 있다고. 난 이것도 싫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과거에 애인에게 호되게 당한 케이스가 많았다. 그러니 사랑이 무서워서 싫지 않은 정도의 사람과 결혼한 경우다. 이런 사람들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나와 결혼할 상대방에게는 대단한 실례가 아닐 수 없다. 평생 미안하게 살아야 한다. 아니 애초에 그런 생각으로 결혼하면 안되는거다.

너나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하면 되지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고 한다면 최근에 주변에서 섹스를 하지않는 젊은 부부들을 많이 보았고, 그들 부부 대부분은 바람을 피우고 있거나 바람을 피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조건에 맞아 결혼을 하고 살다보니 자연히 바깥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타인이랑 한 이불 덮고 사는게 그리 쉬운일인가. 이혼을 했다는 친구의 얘기도 들었고, 3년 결혼생활 하면서 섹스를 두번밖에 안했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으니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뭐 이런저런 생각도 아니지.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하면 되는거야'라는 그런 생각. 남들 말하듯이 잘 살 순 없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후회하지는 않을테니까.

언제나 당연한 생각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놈으로 취급하는 경우를 당하고 보니 내가 진짜 이상한거야?라고 묻고 싶기도 하다. 아니야 니들이 더 이상한거야.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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