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1백야행 1 - 10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태동출판사
폐허의 건물에서 일어난 기묘한 밀실 살인사건. 용의자는 교통사고로 죽어버리고 사건은 미결로 끝나버린다. 사건의 실체를 납득할 수 없었던 형사는 사건의 주변에 있던 소년과 소녀를 의심하며 19년 동안 그들을 감시하고, 무수히 많은 범죄들이 그들의 주변에서 발생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은 소아성애, 시체간음, 강도, 절도, 강간, 살인 사건 등 무수히 많은 범죄가 등장하고 그들 대부분은 예상되는 두명의 범인 료지와 유키호에 의해서 행해지지만, 끝까지 그들이 범죄의 배후라는 것을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물론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떠어떠한 사건이 있었다라고 기술하지만 '료지가 그를 죽였다' 따위의 문장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건을 맡은 형사는 끝까지 '아마 그랬을 것이다'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백야행은 인물의 심리묘사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가슴을 후벼파는 명문이나 구절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심하게 얘기하면 사건 파일을 최소한 이야기가 되게끔 엮어놓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고 설명하는 식이다. 독자는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위치하고 있는 인물들, 그리고 증언,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 그러나 한번도 범인 둘이 조우하는 장면과 범행 장면을 묘사하지 않는 통에, 일반 추리 소설이 추리할 여지를 남겨두고 독자를 책 속에 끌어들이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시선을 잡아 끈다. 즉 백야행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완벽히 설명이 되지 않은 불완전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독특한 긴장감이다. 그 둘이 사랑하는 사이인가. 아니면 단순한 사이코패스의 조합. 왜 둘은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등등의 사건이 근원에 자리하고 있는 인물에 대해 상상하게 만든다. 이것은 범인이 누구일까라는 추리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재미면에서 단연 으뜸인 소설 백야행은 일본에서 원작과는 다른 형태의 드라마로 탈바꿈 한다. 독자에게 범인을 이미 알려주고 들어가는 이 소설의 매력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음으로 사건의 간극을 여백으로 비워두는 것이다.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진 백야행은 이런 사건의 간극을 처음부터 메우고 시작한다. 차곡차곡 메워진 빈자리는 드라마의 시청자를 편하게 이끌고 미스테리 성질이 강한 원작을 멜로 드라마 성격을 짙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 고통 받았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의 울림은 당연히 줄어 버린다.

소설이든 영화든 불필요한 부연 설명이 많이 들어갈수록 상상의 여지는 줄어들게 되고 따라서 반전 혹은 감정의 여운은 감소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너무 불친절하다면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진다. 소설 백야행은 이런 줄다리기를 기가막히게 잘한 작품이다. 영리하게도 마지막까지 이런 전략을 버리지 않는다. 이런 방식이 독자들을 얼마나 흥분시키는지 소설과 드라마를 비교해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국내에서 영화화가 되고 있을 터인데 어떤 방식으로 찍어나가고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덧붙여.
-. 소설과 드라마를 비교하면 소설의 방식 탁월하고 매력적이지만 그렇다고 드라마가 후지다는 것은 아니다.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도 그 간극을 눈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잇점이 분명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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