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마인 - 10점
김내성 지음/판타스틱(계간지)
세계적인 무희 주은몽은 결혼식을 앞두고 주홍빛 망토를 둘러쓴 괴인의 습격을 받는다. 주은몽의 목숨을 노리는 괴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칠십만 경성 시민을 경악케 한 잔혹한 복수극이 잇달아 벌어진다. 숨 가쁘게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 속에서 번득이는 명탐정 유불란의 날카로운 추리가 펼쳐지는데… (알라딘 책소개)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 작가, 출간 5년만에 18판, 광복 후 30판, 경성을 종횡무진하는 명탐정! 게다가 1939년에 출간,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하에 나온 추리소설. 이런 키워드만 보고도 당장 보고 싶었다. 게다가 제목도 '마인'이다. 현재까지도 추리소설과 같은 장르문학이 척박한 대한민국의 환경에서 39년에도 걸출한 추리소설이 존재했었다는 얘기인듯 싶은데 지금은 명맥이 끊어진 그 시대의 추리소설이 궁금한 것은 당연할터이다.

책을 읽기 전에 한가지 걱정했던 점은 문체가 어떠하냐였다.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이라도 나이가 반세기가 넘은 책을 읽으려면 단어와 문체 모두 그 시대의 것일 터인데 그렇다면 쉬이 몰입하기 힘들게 마련이다. 가로쓰기에 길들여진 인간이 세로쓰기로 쓰여진 책 읽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와 비슷할듯. 이번에 판타스틱에서 나온 '마인'은 현재의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에 따라 다듬어서 최소한 그러한 우려는 없었다. 그렇다고 본문을 다 뜯어고친 것은 아니고 대화체 등은 원작 그대로 두어서 그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말은 거꾸로 대화가 상당히 우습게 들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고전 한국 영화를 볼 때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문어체의 대사가 얼마나 우습나. '이 품은 나의 피난처', '야! 저놈 봐!', '저런 대담한 놈 봐!' 같은 낯간지럽고 이질적인 대사들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우습지만 또한 그 시대의 면면을 보는 것 같아 즐겁기도 하고, 우습다고 하여 책의 재미에 방해를 주지도 않는다.

마인을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신파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을 쫓아 결혼한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한 가난한 남자,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원수인 두 집안의 사랑으로 인해 불거진 갈등과 복수의 이야기가 마인의 중심축이다. 게다가 사건을 설명하는 전지적 시점의 화자가 있고, 그 화자는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얘기한다. 좀처럼 어울리지 않아 볼 수 없었던 이런 조합은 이 책의 독특한 묘미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건과 상황의 지나친 설명으로 독자가 상상해야할 몫을 메워버리기 때문이다.

독자의 호기심을 잡아끄는 마인의 사건은 등장인물들을 24시간 감시하며 귀신같은 솜씨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사라지는 살인사건이다. 그러나 밀실살인 사건의 경우 대다수가 독자가 알지 못하는 통로가 있었다거나 하는 어이없는 결말로 끝나는 것처럼 이 귀신같은 솜씨의 범인은 독자가 쉬이 예상할 수 있는 정도다. 그러나 그 예상되는 결말로 이르기 위한 범인잡기와 그의 동기, 그리고 그것을 신파로 엮어 놓은 솜씨는 대단히 훌륭하다. 게다가 간간히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상황들은 상당히 즐겁다. 좋아하는 소녀의 양말을 훔쳐간 미소년을 쫓아가보니 그 양말을 빨아먹고 있더라는, 그런 상황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유불란이라는 탐정이다. 보통의 탐정이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모든 사건을 통제한다고 할 때 그는 좀 부족하고 인간적이다. 사건의 중심인물과 사랑에 빠져 사건과 사랑 사이에서 괴로워하기도 하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다른 인격을 질투하기도 한다. (그는 분장놀이를 즐기는 인위적인 이중인격자다.) 뛰어난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하기는 하지만 발생한 7건의 살인 중 단 한건도 막지 못한다. 대응이 느리다. 그러다 결국 사건이 해결된 후 탐정직을 사퇴하기까지 한다. 인간적이고 화끈하고 매력적이다.

그러니까 마인은 촌극과 신파극을 탐정을 등장시켜 논리적인 추리소설로 승화시킨 재미있는 작품이다. 시대가 시대이니 그 역사를 반영하는 독특한 분위기, 그리고 비뚤어진 시대의 장르문학도 느껴볼 수 있는 기념비적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39년의 소설이 이러할진데 그 명맥이 끊긴 것이 너무 아쉽고, 현재도 순수문학에 비해 인정받지 못하는 장르문학을 39년도에 시도했다는 작가 김내성이 대단하다 싶다.

덧붙여.
 -. 소설 자체도 대단하지만, 후기에 달려있는 정혜영 대구대 교수의 작품설명이 일품이다.
-. 한국추리소설 걸작선에 김내성의 타원형 거울이 실려있다길래 찾아보니 모두 절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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