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포영화 팬들의 오랜 꿈은 요즘은 헐리웃에서 말쑥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찍는 감독인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과 스파이더 맨의 샘 레이미가 다시 한번 초심으로 돌아와 데드 얼라이브(1992)나 이블 데드(1983) 같은 영화를 한번만이라도 더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이같은 목마름은 그들의 영화 속에서 예전 영화를 패러디하는 (스파이더맨에서의 옥토퍼스 박사의 수술실 학살같은) 장면들로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었지만 타는 갈증을 잠재울 순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샘 레이미가 80년대 스타일로 돌아왔다. 그가 누구인가. 23살의 어린 나이에 이블데드 한편의 영화로 미국의 비디오 시장을 싹쓸이하고, 국내의 B자 비디오 시장을 평정했던 이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드래그 미 투 헬이라는 다분히 이블데드적인 제목으로 돌아왔다.

17년 전 이블데드3-암흑의 군단 (1992) 촬영을 끝내고 형인 이반 레이미와 함께 쓴 드래그 미 투 헬은 오래된 아이디어 만큼이나 초심으로 돌아간 그러니까 미국의 공포영화의 황금기였던 80년대 스타일로 만들어진 끝내주는 작품이다.

은행의 대출관리인 크리스틴. 대출 연장을 신청하는 노파-가누시 부인이 찾아오고, 승진 문제를 안고 있는 크리스틴은 상사에게 자신의 결단력을 보여주고자 연장 신청을 단호히 거절한다. 수십년 동안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될 가누시 부인은 그녀에게 흑염소 악마 라미야의 저주를 내린다. 이제 그녀는 3일동안 라미야의 공포에 시달리다 결국 지옥으로 끌려갈 운명에 처한다.

드래그 미 투 헬은 앞서 얘기했듯 80년대 향수가 가득한 영화다. 그러니까 현실성은 결여되어 있지만, 영화적인 상상력 하나만으로 끝까지 밀고가는 장르 영화의 재미에 충실한 작품이다. 예쁘장한 여주인공은 한밤중에 공동묘지에서 시체를 파내야 하고, 시체와 함께 진흙탕 속에서 뒹굴어야 하고, 징그럽게 생긴 각종 벌레들을 먹고 뱉어야 하고, 자신의 애완 고양이를 죽여야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기 보다는 자신이 속한 공포영화의 장르를 지배하고자 하는 슈퍼 히어로처럼 보인다. 그러니 보는 이는 즐거울 수 밖에 없다.

관객을 놀래키기 위해 창고에서 커튼을 걷으며 가누시 부인이 등장하는 장면. 요즘 영화같으면 관객이 놀랬으니 노파의 역할은 끝났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터인데 샘 레이미는 굳이 여기서 크리스틴의 목에 노파의 손을 쑤셔 넣고야마는 기괴하고 우스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주차장에서의 가누시 부인과 크리스틴의 싸움은 또 어떤가. 평범한 영화였다면 단추나 머리카락을 몰래 뜯어가지고 갔을 터인데 힘없는 노파는 여기서 크리스틴과 기나긴 육박전을 벌인다. 스테이플러로 눈을 찍혀도 덤비고, 자동차 대시보드에 부딪혀 틀니가 빠졌음에도 잇몸으로 크리스틴을 물어버리고자하는 장면들. 아~ 너무 기가막히고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재밌다.

그러니 드래그 미 투 헬은 진정으로 웃기고 무서운 영화다. 이블데드 삼부작은 공포영화 속에서 코미디가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한 교과서적인 작품이고 결국 스플래터라는 웃기면서 무서운 공포영화 장르를 탄생시키는데 일조한 작품이다. 통상 이블데드 1편은 공포에, 이블데드 3편은 코미디에 좀 더 편중되어 있고, 이블데드 2편이 공포와 코미디의 적절한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따라서 이블데드 2편의 팬층이 가장 두텁다. 드래그 미 투 헬은 그 이블데드 2편과 맞먹는다. 제대로 웃기기도 하고 진정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한다.

잘 만들어진 영화는 버릴 장면이 없다. 사소한 소품도 의미를 품고 있고 영화 속 인물들도 낭비되지 않는다. 러닝타임도 낭비되지 않는다. 99분에 보여줄거 다 보여주고 마지막도 질질 끌지 않고 결말나면 타이틀 로고 올라오고 화끈하게 끝난다. 그리고 좋은 영화는 예고편이 그저 맛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크린에서 알려준다. 그러니까 드래그 미 투 헬의 예고편에서 무엇을 보든 영화는 그 이상이다.

올해 많은 공포영화들이 개봉을 했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슬래셔 무비의 효시인 13일의 금요일과 할로윈 리메이크작이 개봉했고, 역시 슬래셔 무비인 블러디 발렌타인 리메이크작, 프랑스산 고어영화 마터스, 국내 유일의 프랜차이즈 호러영화 여고괴담의 5편, 개신교 비판 공포영화 불신지옥 등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단언컨데 당신이 만약 올해 개봉하는 20여편의 공포영화 중 단 한편만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드래그 미 투 헬'을 보는 것이 최상의 선택일 것이다. 단연코 올해의 최고 즐거운 공포영화임에 틀림없다.

덧붙여.
-. 돈 문제로 인해 죽어나가는건 언제나 힘 없는 약한 자들이다. 알콜중독 어머니, 뚱뚱했던 자신의 과거, 시골출신 등 열등감을 안고 있는 크리스틴이 승진하기 위해 대출연장을 거절하는 것이나 평생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노파의 심정이나 이해못할 것이 뭐가 있나. 그러나 결국 죽음은 그런 없는 자들에게만 찾아온다. 그들끼리만 아웅다웅 다툴 뿐이고. 권력자는 언제나 사건의 중심에서 안전하게 한발짝 물러나 있다. 힘없는 노파 가누시 부인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작 분노해야될 상대는 모르고 눈앞의 상대에게만 저주를 퍼붓는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러지 않나.

-. 드래그 미 투 헬의 크리스틴은 이블 데드 애쉬의 다른 판본이다. 혼자서 악마들과 씩씩하게 싸우고 결국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까지. '씩씩하게 싸우고'와 '지옥으로 끌려가는'의 조합. 즐겁다.

-. 드래그 미 투 헬의 타이틀 로고는 검은 바탕에 볼드 고딕체의 하얀 글씨로 이블데드와 같다. 시작부터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결말에 다시 한번 감동을 준다. 역시 즐겁다.

-. 가누시 부인의 자동차 번호판은 99951이고, 거꾸로 하면 IS666, 즉 '나는 악마야'라는 번호판을 달고 있는 셈. 자동차가 여러번 등장하니 눈치있는 관객은 금방 알 수 있을 듯. 요런거 즐겁다.

-. 오컬트 영화답게 같은 장르의 최고봉이라고 불리우는 엑소시스트의 예고편에서 사용된 '엑소시스트 심포니'가  엔딩 타이틀에 사용되고 있다.

-. 지퍼스 크리퍼스 때부터 저스틴 롱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촬영 스케쥴로 출연을 고사했다는 브루스 캠벨이 나왔으면 좀 더 열광했을 수도 있겠다. 게다가 같은 이유로 엘런 페이지도 출연을 포기했다니 아쉬운 마음이...

-. 샘 레이미는 후반부 엑소시즘 장면에서 악마가 등장하기 전 불려나오는 유령들 중 한명으로 카메오 등장을 한다는데 몰랐네.

-. 샘레이미가 설립한 영화사 고스트 하우스에 따르면 2010년 이블데드 제작이 샘 레이미 감독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블데드 시리즈의 리메이크가 될지, 아니면 3편-암흑의 군대의 시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쨋든 또다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제목: 드래그 미 투 헬 (Drag me to hell, 2009)
감독: 샘 레이미
배우: 알리슨 로먼, 저스틴 롱, 로나 라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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