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러 일본에 간 애인 슈슈를 찾기위해 밀입국한 철두. 불법체류자로 경찰의 눈을 피하며 일용직 노동자로 힘들게 버티던 그는 우연히 야쿠자의 부인이 되어 있는 애인 슈슈를 만난다. 중국을 탈출하면서 경찰에게 상해를 입혀 돌아갈 곳도 없는 철두는 변심한 슈슈에 대해 충격을 받고 돈을 벌어 일본 신분증을 얻기 위해 불법적인 일을 시작한다. 중국인 불법체류자 집단은 철두를 중심으로 자잘한 범죄들을 행하고 결국 대만 조직과 마찰을 빚는다. 우연한 기회에 철두는 슈슈의 남편이자 야쿠자 보스인 에구치와 손을 잡게 되고 힘을 얻는 철두 조직은 신주쿠를 장악하게 된다.

90년대 일본에 급증한 중국 밀입국자의 이야기를 느와르 형식으로 풀어낸 신주쿠 사건은 인간의 거짓된 연대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잔혹한 드라마로 풀어낸 영화다. 자잘한 범죄를 일삼던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이 본격적으로 연대하고 힘을 펼치게 된 계기는 군밤을 팔던 아걸이 대만 조직의 보스에게 얼굴을 난자당하고 팔이 잘리면서 부터이다. 이를 시작으로 철두는 몇건의 살인을 저지르고 중국인들은 야쿠자의 비호아래 신주쿠에서 일정 구역을 허락 받는다. 이는 일견 성공으로 보이지만 이들의 타락은 당연히 예정된 것이었다.

아걸은 군밤장사가 꿈일 정도로 소박하고 착한 심성의 소유자였다. 어느날 기계를 조작하여 빠찡코를 하던 친구가 화장실에 간다는 말에 자리를 지켜주던 아걸이 대만 조직에게 발각되게 되고 린치를 당한다. 아걸은 입을 열지 않지만, 친구는 아걸을 보고 도망을 친다. 이후 이사건을 계기로 중국인들이 폭력으로 연대하기 시작하고 집단이 된다.

이기심과 유약함은 집단을 이루면서 종종 의리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다. 소수의 약자들이 살아남으려면 연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거짓된 연대는 개개인이 따로 존재하는 것보다는 위험하고 위해하다.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행한다는 목적보다는 개인의 욕망을 위해 집단으로 뭉치게 되고 이들은 신주쿠를 장악하고 일견 그들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결국 각자의 이기심으로 서로를 죽이고 파멸시킨다. 신주쿠 사건은 공통의 목적이 아닌 개인의 사심으로 연결된 집단이라는 것의 허황됨을 보여줌으로써 조직폭력이란 결국 의리로 포장되었지만 돈이 목적이기에 폭력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결론을 보여준다. 이는 비단 중국인 조직 뿐 아니라 보스를 배신하고, 다시 배신하는 야쿠자에게도 동일한 룰이다.

이런 이기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조직 보스의 위치에 있는 착한 형님 철두의 고군분투는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그가 딱히 능력있는 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인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정서적 비약을 위해 인물들이 서서히 타락하는 장면들은 과감히 생략해 버렸지만, 그걸 보여줬다 하더라도 철두가 그들과 꾸준히 연락을 했을리 만무하다. 그러니까 신주쿠 사건은 구심점도 없고, 구심점이 없으니 카리스마를 내뿜는 주인공도 없다. 그저 현실적인 추잡한 인물들의 나열이 있을 뿐이다. 액션 느와르라고 홍보가 되어 있는데 사실 액션도 없다. 달리기를 액션이라고 부른다면 액션 영화가 맞겠지만... 잔인하게 린치를 당하고 복수도 하지만, 거기에 따르는 쾌감은 없다. 다양한 캐릭터가 섞여있는 집단이 있지만 의리는 없다. 한마디로 신주쿠사건은 이야기의 비약이 심한 잔혹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보고나면 찝찝함이 남는 그런 영화다.

덧붙여.
-. 허술하고 논리적인 비약도 많지만 종반부의 대만조직, 중국조직, 야쿠자가 모여 좁은 공간에서 펼치는 파멸극은 꽤 괜찮았다. 멋지지 않기 때문에 날것의 느낌도 많이 묻어나고 말이다.

-. 광고에서 성룡이 웃지 않는 진지한 정극이라는 표현을 자주쓰는데 그게 뭐그리 중요한지 모르겠다. 중안조나 뉴폴리스스토리에서도 그런 성룡은 있어왔다. 굳이 차별하여 광고를 할거면 발차기도 한번 하지 못하는 못난이 성룡이라고 했어야지. 성룡은 영화 속에서 연기를 잘하긴 하지만 왠지 이 장면에서 발차기라도 한번 할 것 같은 상상이 계속 되어서 사실 영화에 몰입이 잘 안 됐다. 거미줄을 뿜지 못하는 스파이더맨을 보는 것 같은 답답함. 그런 느낌이다. 성룡의 연기가 나빴다는 것이 아니라 구축된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액션이 없는 영화 속의 성룡에 대해서 좀더 쓰게 내뱉자면 성룡이 아닌 다른 배우가 그 자리를 메워도 성룡의 모습이 생각나지는 않을거라는 사실이 그의 존재감을 영화 속에서 더욱 작게 만든다.

-. 중국배우와 일본배우가 같이 나오는데 이들이 잘 섞이지 못하고 연기가 서로 어색하다. 특히 일본 배우들이 심하다. 다케나카 나오토는 그럴듯한 대사를 하려고 하지만 표정이 너무 얕고, 야쿠자들 또한 인상만 쓰고 있어서 어색하기 짝이 없다. 가토 마사야의 야쿠자 보스는 표정이 기품이 없고 너무 유약해 보인다. 한마디로 아마추어처럼 보인다. 이렇게 보이는 것은 유치한 대사도 한 몫한다.

-. 액면가로도 20살은 넘게 차이가 나보이는 성룡과 서정뢰가 소꼽친구라는 설정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 중국어는 모르니 패스하고, 일본어 번역이 완전 개판이다. 일본어를 번역한 영어대사를 보고 자막을 만들었을 거라 생각된다. 왜 나에게 청부살인을 맡기냐는 성룡의 질문에 가토 마사야가 '내 밑에는 믿을놈이 아무도 없다'라고 얘기하는데 자막에는 '내 밑에는 쓸만한 놈이 없다'라고 나온다. 나중에 부하에게 배신당하는 야쿠자 보스의 의미심장한 대사다. 그걸 저런 식으로 의역해 놓은 것을 보면 영어 자막이 틀림없다. (경험상 일본어의 영어자막이 생략과 의역이 많다.) 성룡과의 관계를 서정뢰는 끝까지 '오사나나지미(소꼽친구)'라고 하는데 끝까지 그냥 친구라고 나온다. 이것말고도 거의 모든 일본어 대사 번역이 정말 아스트랄한 수준이었다. 일본어를 하는 번역가를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가. 영화사의 성의는 이런 곳에서 나온다. 짜증난다.

제목: 신주쿠사건 (2009)
감독: 이동승
배우: 성룡, 오언조, 서정뢰, 판빙빙, 다케나카 나오토, 가토 마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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