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맞는 엄마. 때리는 아빠. 겁에 질린 아들. 말리려는 여동생. 아빠가 휘두른 칼에 찔려 숨진 여동생. 놀라서 집밖으로 뛰쳐나갔지만 때마침 달려오던 트럭에 부딪혀 숨진 엄마. 감옥갔다 출소한 아빠. 용역깡패로 성장한 아들. 아빠 패는 아들. 배다른 누나. 배다른 누나를 때리는 남편. 남편 피해 도망간 누나. 배다른 누나의 아들. 깡패짓해 누나 생활비 주는 동생. 미안하고 찜찜한 누나. 할아버지 패는 삼촌을 보게된 어린 조카. 다시 튀어나온 아빠에 대한 트라우마.

월남 다녀온 아빠. 후유증으로 정신 오락가락 하는 아빠. 포장마차 철거 깡패의 쇠파이프에 맞아죽은 엄마. 엄마 역할 하는 여고생. 돈 뜯어가는 남동생. 엄마 죽은지 모를 정도로 치매에 걸린 아빠. 엄마 바람난줄 알고 증오하는 아빠. 밥 차려주고 집안살림하는 착한 딸이 자기 죽일려는줄 알고 있는 아빠. 그래서 되려 칼들고 죽이려는 아빠. 집구석이 지겨워 막사는 남동생. 용역 깡패 찾아간 남동생. 누나 때리는 남동생. 엄마 죽인 철거 용역 깡패가 된 남동생.

돈 빌린 아빠. 엄마 패는 아빠. 업체 직원에게 맞는 아빠. 그걸 막는 맞던 엄마. 우는 아이들. 그리고 영원히 정신 차리지 못하는 권위적인 종이 호랑이 아빠들의 무한 반복.

클로즈업이 많은 똥파리는 인물들의 얼굴에 새겨진 분노를 극대화하여 폭발직전의 감정이 철철 끓어넘친다. 또한 카메라는 인물들의 뒤를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그들이 보는 장소, 사람, 사건과 그들이 행하는 악행과 당하는 정서적 충격을 철저히 지켜보도록 한다. 우리 사회의 변두리에 자리하고 있는 폭력이 들끓는 현실. 폭력이 폭력을 낳고 누구도 구제해주지 않는 시궁창 같은 현실속에서 똥파리 같이 의미없는 날개짓만 되풀이하며 그들은 폭발직전의 분노를 삼키고 또 삼킨다. 폭력과 동일시 되는 혈연으로 연결된 아버지의 부재만이 (배다른 누나와 조카와 같이) 유일하게 가족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니까 그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맞서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맞선다는 뜻은 또다른 가해자가 된다는 말이고 결국 주인공의 말처럼 '존나게 때리는 사람도 언젠가는 존나게 맞게 된다.'는 진리를 남긴다. 이 영화는 이렇게 폭발 직전의 분노를 영화적인 에너지로 상승시켜 보는 이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어 결국 현실을 곱씹어보게 만든다.

똥파리는 현대 사회에서 혈연이 아닌 사람들로 이루어진 유사가족의 형태를 보여주었던 '가족의 탄생'의 뒷골목 버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결말을 내기 위한 무리한 진행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경찰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한번의 등장에서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경찰도 또한 분노의 한 대상일 뿐이다. 해서 영화는 폭력 혹은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연스레 등장하는 경찰의 존재 또한 무시해 버리고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가난한 자들의 인생을 보여주는, 감독이 하고싶은 이야기에 경찰의 존재는 그닥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배제되어 있고, 이것이 영화의 개연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도움이 되지도 못하는 경찰은 아웃 오브 안중이라는 감독의 의중일 수도 있고. 이러나 저러나 양익준의 똥파리는 분노와 슬픔의 에너지가 절절하다 못해 폭발하듯 끓어넘치는 가슴 아픈 영화다. 혈연이 아닐지라도 어쨋든 가족에게서 미래를 찾는 조금은 희망적인 영화이기도 하고.

제목: 똥파리 (2009)
감독: 양익준
배우: 양익준, 김꽃비, 이환, 박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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