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본방을 사수하며 열심히 시청한  MBC의 납량특집 드라마 '혼'이 얼렁뚱땅 아스트랄한 결말로 막을 내렸다. 뜬금없는 추격전으로 시작하여 과거로 넘어간 드라마 1회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얼개를 보이더니 급기야 마무리도 짓지 않고 부랴부랴 끝나버렸다. 마무리 부분에 있어서는 어떤 비난을 받아도 할말이 없는 드라마지만 다루었던 소재와 주제, 참신한 캐릭터는 어쨋거나 의미가 있었고, TV에서는 유례없었던 잔인한 묘사를 통해 또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드라마 주인공이 단순히 정의를 행하는 인물이 아니라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해 사회가 안고 있는 분노를 대행한다는 대리자 혹은 희생당한 자신의 과거에 대한 복수를 정의의 이름으로 행한다는 선도 악도 아닌 다층적인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것은 이례적인 것이었고, 최면과 빙의를 결합하여 범죄자를 처단한다는 설정도 참신했다. 현재 공포라는 장르에서 트렌드라고도 할 수 있는 싸이코패스 범죄자들과 그에 대한 죄의 무게를 저울질 했고, 단순 살인의 나열이 아니라 그것을 학교로 부터 정치, 자본의 영역까지 확장시켜 현실의 문제를 반영하며 잊혀졌던 사건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고, 돈으로 사람도 죽이는 현실도 풍자했다.

1회에서 전형적인 괴담류의 오컬트로 시작한 드라마는 영리하게도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라는 것을 증명하려는듯 2회부터는 틀에 박힌 귀신들을 배제시키고 사람의 악행을 부각시켰다. 양복입은 뱀이라는 사이코패스 인물을 김갑수의 구렁이 같은 호연을 통해 제대로 각인시켜 주었고, 범죄의 희생자들이 한평생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지, 그에 반해 범죄자들은 얼마나 손쉽게 사회로 다시 복귀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못 가진 자는 진실도 알지 못한체 돈에 의해서 얼마나 쉽게 죽어나가는지도 보여주었다.

물론 이 같은 묵직한 함의에 비해 외피는 허접한 것도 많았다. 특히 스턴트나 액션 장면은 조소할 수준이었고,  툭툭 끊어지는 장면들도 많아 매끄럽지 못했으며 몇몇 인물들의 심리 변화나 행동은 도저히 공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은 어쨋거나 주변에 널려 있는 범죄를 소재로 하여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공중파 드라마 속에 녹여내었고, 고루한 귀신 이야기를 답습하지도 않았으며, 파격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살인 장면을 묘사하며 범죄의 무서움과 복수의 쾌감을 시청자에게 전달했다.

낙태와 성폭행 등의 사회문제를 끌어들였던 M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MBC에서 참신한 드라마를 보여주었다. 시청률이 그다지 좋지 않아 내년에도 이런 식의 납량특집 드라마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의 시도를 가지고 돌아온다면 장르 팬으로서 언제든 환영하고 기다리고 있겠다. 수고하셨습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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