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 10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데니스 루헤인의 사립탐정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인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는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이 순진한 청년들을 꾀어 악을 전염시켜 또다른 살인마를 양산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타고난 범죄자인 싸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의 확장형으로서 이러한 악한 범죄에 대한 전염성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언제나 흥미롭다. 막심샤탕의 악의 영혼이나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들 말이다. 사람들은 매스미디어든, 돈이든, 사람이든 하여간 뭐든 간에 사방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고 그것들중 어떤 것은 공포를 만들고 범죄자를 키워낸다는 전개는 그럴듯한 개연성을 가진다. 커다란 공포의 피해자가 되기 보다는 차라리 가해자가 되고 말지라는 그런 심성이 보인다고 할까. 언제나 생각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선의의 전염보다는 악의의 전염이 더 빠르다.

이 소설에는 정의로움에 불타올라 범인을 수사하는 탐정이나 경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탐정이기에 사건 의뢰의 시작은 돈이며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수록 드러나는 범죄의 잔혹함에 치를 떠는 켄지와 제나로는 법이라는 공권력에 기대어 교도소나 정신병원에 그들을 넣기 보다는 그들 스스로 범죄자들을 처단하길 원한다. 경찰 또한 그들에게 그런 처형을 보장해 주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들을 '죽인다'는, 즉 아무리 나쁜 놈이지만 살인을 한다는 죄책감과 살인을 하면서 느껴지는 신과 같은 전지전능함의 쾌감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한다. 부조리한 상황에 분노하고 과도하지 않게 발휘되는 정의심이 힘과 권력보다는 땀내를 느끼게 하여 캐릭터를 현실적이고 매력적이게 만든다.

소꿉친구로서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켄지와 제나로도 매력적이지만, 폭력이나 부조리한 현실에 절어있는 주변의 모든 인물들도 매력적이다. 눈 하나 깜짝않고 사람을 죽이지만 켄지와 제나로에게만은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건달 부바나 경찰임에도 법보다 주먹을 믿는 형사 데빈과 오스카, 퇴직경찰로 바를 운영하는 착한 맡형 같은 느낌의 게리 등 주/조연의 캐릭터 하나하나가 매우 생동적이며 작품의 재미를 한껏 올려준다.

폭력을 쫓지만 그 자신이 아동학대나 주정뱅이 남편의 피해자였던 켄지나 제나로의 입체적인 캐릭터 뿐 아니라 사회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범죄와 범죄 조직, 그것을 용인하며 또다른 범죄자를 추적하는 과정 또한 매우 정교하다. 사람을 몇백조각으로 갈가리 찢어서 전시하는 극악 무도한 연쇄살인범을 쫓지만, 그 자신들도 과거의 피해자이면서 폭력에 대해 그다지 떳떳하지 못한 주인공이기에 이것들이 맞물려 말 그대로 폭력이라는 진흙탕과 진흙탕 속의 자경단이라는 또다른 물음들을 쉴새없이 던지는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는 그 제목만큼이나 달콤하고 겁나 재미있다.

밀리언셀러클럽을 통해 출간된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는 순서대로 출간되지 않았으니 혹 관심있는 분들은 시리즈의 순서대로 읽기를 권한다. '전쟁전 한잔'을 시작으로, '어둠이여 내손을 잡아라', '신성한 관계 (출간 예정)', '가라 아이야 가라', '비를 바라는 기도'의 순서이다. 순서대로 읽었으면 좋았을걸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덧붙여.
-. 가라 아이야 가라의 영화를 보고서 책을 읽으니 켄지는 캐시 애플렉, 제나로는 영락없이 미쉘 모나한의 얼굴이 떠오른다. 둘다 정말 적역이라는 생각. 가라 아이야 가라는 영화도 상당히 재미있다. 모건 프리만, 에드 해리스가 출연해 주니 카리스마 또한 일품이고.

-. 시리즈 중에 가라 아이야 가라만 읽었는데 나머지도 이참에 다 질러 버렸다. 신성한 관계가 어여 출간되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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