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 한 잔전쟁 전 한 잔 - 10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인 '전쟁 전 한잔'은 정치와 범죄 조직의 커넥션에 아동 성폭력이라는 키워드를 하나 더 끼워넣는다. 상원 의원의 의뢰로 중요한 자료를 갖고 사라진 흑인 여인을 쫓는다. 여인을 찾아내지만 갱단의 총에 맞아 살해되고, 켄지는 그 과정에서 갱 한명의 발목을 날려버린다. 여인에게 건네받은 사진엔 정치인과 갱단의 두목이 함께 찍혀 있다. 사건의 중심에 다가갈수록 구린내는 더해가고 켄지와 제나로는 갱단으로부터는 복수의 대상이 된다.

켄지와 제나로의 첫번째 이야기인만큼 켄지와 제나로의 개인사가 더욱 자세히 묘사된다. 소방관 출신의 시의원으로 외부에서는 영웅으로 대접받는 마초 아버지이지만, 가정내에서는 어린 켄지를 매일 두들겨 패고 다리미로 지지기까지 하는 폭군이었던 아버지의 그늘에서 내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켄지와 술에 취해 의처증으로 매번 제나로를 두들겨 패는 남편 필립의 이야기는 주인공들의 폭력에 대한 증오와 잡배에 대한 분노의 시발점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따라서 이들이 폭력적인 무뢰한들을 대하는 모습에는 자비심이 없지만, 세상이 깨끗하길 바라는 그들이기에 고뇌는 쌓여간다. 누구든 똑같이 처우를 받기를 바라지만, 그들 자신이 차별을 행하는 인물이기에 딜레마도 늘어간다. 그리고 자신들이 행하는 차별은 돈과 권력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기에 그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다르게 보면 인간적이게 만들고.

전쟁 전 한잔에는 소시민이 바꿀 수 없는 정치 사회 권력에 대한 비애감이 숨어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정치의 이면에는 정치인의 이익을 위한 정책이라는 공공성 보다는 개인적인 이기심이 숨어있고, 자신의 안전과 권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어린 아들조차 성의 노예로 팔아버리는 비정하다는 말도 아까운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런 삶을 견디고 살아난 아들은 마음이 없는 살인광이 되어 버리는 폭력의 되물림도 보여준다.

이런 지옥같은 사건을 나열하면서도 데니스 루헤인 소설이 매력적인 것은 그가 성인군자인 체하며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정도의 지능만 있어도,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유치원만 나와도 뭐가 옳고 그른지 알수 있다. 그러나 알고 있다는 것과 내가 그 아는 것을 모두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무엇이든 차별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상황에 처했을 때 알고 있는 것데로 행동하지 않는다. 루헤인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와 같이 부조리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정의를 알고 정의를 위해 고군분투 죽을 고생을 하지만 그 결말은 결코 도덕적이지도 합당하지도 않고, 속이 시원하지도 않다. 그렇기에 더욱 속깊은 물음을 던져 준다. 아~ 이 시리즈 너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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