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과 같은 만능 슈퍼히어로, 다크맨과 같은 안티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과 같은 인간적인 고뇌에 번민하는 슈퍼히어로도 등장했으니, 킥애스처럼 별다른 능력이 없는 정말로 평범한 인간이 슈퍼히어로의 꿈을 꾸는 영화가 나오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온갖 종류의 슈퍼히어로 영화의 패러디와 오마쥬가 가득한 영화이면서도 그 모든 것을 거부하는 힘이 있는 영화다.  '초능력 없는'과 '슈퍼히어로' 라는 단어 사이에 모순이 존재하기에 한계도 분명히 있는 영화고. 데이브가 브루스 웨인의 예를 들면서 평범한 인간도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자 친구가 그는 무지하게 값비싼 장비들을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고 반박한다. 그런 반박이 킥애스에도 정확히 통용된다. 결국 마지막에 빅대디가 구입한 값비싼 장비로 악당들을 쳐단하니까 말이다. 결국 초능력 없고, 평범하면서도 현실성 있는 슈퍼히어로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영화라고나할까. 그렇지만 영화가 주장하는 현실의 슈퍼히어로 논쟁에서 벗어나면 이렇게도 즐겁고 막나가면서 재미있는 영화도 없다.

킥애스를 보면 누구나 힛걸의 매력에 반하게 된다. 씨발을 입에 달고 사며 쿨한 표정으로 악당들을 사지절단하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통쾌하기 짝이없다. 그러나 10살 꼬마 여자아이가 행하는 이 도륙의 현장을 보는 것은 찜찜함을 동반한다. 왜 어린아이가 살인을 해야만 할까. 영화는 그녀에게 복수라는 명분을 준다. 복수에 대한 분노는 아빠인 빅대디에 의해서 주입된 감정이다. 갱단에게 살해당한 엄마의 복수를 위해 아빠는 그녀를 살인병기로 키워낸다.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원작을 보면 사실 힛걸에 관한 굉장한 반전이 하나 숨어있다. 경찰이었던 빅대디는 갱단에게 아내를 잃고 방황하지만 그의 딸과 함께 복수를 한다는 것이 기본 이야기이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빅대디는 굉장한 만화광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코믹북 형태로 기록한다. 원작에서는 마지막에 빅대디가 죽기전에 킥애스에게 고백을 한다. 사실 자신은 경찰도 아니고, 단순한 카드회사 직원이었으며 바람난 아내에 신물이 나서 딸을 데리고 도망간 한심한 만화광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도 킥애스와 마찬가지로 만화와 같은 삶을 꿈꾸었으며 딸도 한번 뿐인 인생을 지루하게 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만들어 주었다고. 그러니까 빅대디와 힛걸이 가진 복수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힛걸은 아버지가 들고 다니는 캐리어에 많은 돈이 있고 그 돈이 자신들의 자금줄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정작 캐리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모른다. 갱단이 빅대디가 죽기전 캐리어를 열었을 때 그 안에는 한정판 만화책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한정판 만화책을 이베이에 팔아서 자금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빅대디가 벌인 영웅 놀음은 그저 현실성을 잃어버린 만화광의 철부지 짓거리였다는 것이다. 킥애스는 이렇게 슈퍼히어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변용하면서도 매니아들에 대한 철저한 패배감을 심어주는 작품이다. 물론 원작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해피엔딩이다. 악당들을 쳐부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원작의 결말이 조금더 의미심장하다. 힛걸은 엄마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빅대디가 힛걸을 데리고 나간후로 실종된 그녀를 줄곧 찾고 있었다. 게다가 원작에서 킥애스는 케이티에게 자신의 존재를 고백했다가 멍청한 바보새끼라는 말까지 듣고 차인다.


영화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원작이 슈퍼히어로 공식의 전형을 하나하나 해체해서 결국 슈퍼히어로라는 것은 세상에는 없지만 소소한 영웅들이 세상의 톱니를 돌린다는 킥애스라는 작품의 목적에 좀 더 부합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영화는 그 자체로 최고의 각색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무지하게 재미있다. 원작의 모든 장면들을 버리지 않고 이용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피칠갑 B급 액션 영화로 확실하게 변모시켰다. 그 중심에는 클로이 모레츠가 연기하는 힛걸이 있다. 이 귀여운 꼬마 아가씨의 매력은 굉장하다. 쳐진 눈과 삐죽거리는 두툼한 입술이 너무 귀여워서 무슨짓을 해도 다 용서해 줄 것만 같다. 특히 황야의 무법자 테마를 배경으로 시작되는 마지막의 액션씬의 박력은 굉장하다. 마지막 바주카포 씬까지 말이다. 뭐라고 설명해도 참 이런 영화는 그냥 봐야지 맛이다. Awesome!

덧붙여.
-. 큰 힘이 없으면 큰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라는 식의 패러디가 가득차 있어서 요런 걸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 이렇게 욕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는 어차피 19금이니까 확실하게 번역을 해주면 어떨까. Fuck you가 엿먹어라 정도의 욕이 아닌것은 누구라도 알잖아.

-. 빅대디의 니콜라스 케이지, 힛걸의 클로이 모레츠, 킥애스의 아론 존슨까지 모두 눈이 쳐져서 다들 착해보이는데 쿨한 척을 하니까 뭐랄까 원래 안그런데 진지한 척을 해서 귀엽게 느껴진다고나할까. 특히 니콜라스 케이지는 이런 역에 정말 잘 어울린다.

-. 영화 세브란스의 바주카 장면 이후로 가장 웃긴 바주카 씬이 아니었나 싶다. 악당 한명을 그 커다란 바주카포로 날려버리는 통쾌함과 유쾌함이란! 외국애들이 바주카라는 발음을 능청스럽게 하는 것 보면 왠지 다 바보같고 멍청해 보인다. 바주카를 말할 때는 왠지 모두 그 억양과 특유의 깜짝놀라는 바보스런 표정을 짓는다.

-. 힛걸을 보고 있자니, 힛걸을 닮은 딸이 너무나 갖고 싶었다.

제목: 킥애스: 영웅의 탄생 (Kick-ass, 2010)
감독: 매튜 본
배우: 아론 존슨, 클로이 모레츠, 니콜라스 케이지, 마크 스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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