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공수사팀과 전직 간첩, 정확하게는 소속 집단으로부터 버림받은 두 인물이 엮어나가는 의형제는 얼핏 남과 북의 이념대립에 관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돈으로 인해 사람 사이의 인정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영화다. 그리고 여기에 남/북을 끌어들인 것은 돈이 목적이라면 이제 이념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돈의 문제는 이념을 뛰어넘어 사람의 생사를 가늠하게 되었다. 더이상 빨갱이가 문제가 아니다. 돈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이한규 (송강호)는 가족들 먹여살리기 위해 간첩을 잡는다. 대의를 위함이 아니라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 일을 한다. 그리고 돈에 대한 집착은 그의 인간성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이한규가 송지원 (강동원)에게 동화되는 것은 그가 가진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었다. 자신이 돈 때문에 잃어가고 있는 그것 말이다. 이 둘은 베트남을 위시한 동남아로부터 시집와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가출한 여성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한다. 돈 때문에 팔려왔지만, 정작 뿌리를 내리지도 못하고 가출한 여성들말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하는 일은 돈으로 시작된 관계지만, 그래도 인간이란 돈 이상의 '정'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그들을 찾아다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간첩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감성적으로 그려지는 송지원에게 이한규의 마음이 동하는 것이다.
영화속에서 국가적인 대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한규는 물론이거니와 송지원도 마찬가지다. 죽음에 임박해 피를 토하면서도 자신은 배신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정도지만, 그가 '김정일 만세' 따위의 이야기는 한번도 내뱉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조국을 위해 온몸을 다바친다는 느낌보다는 자기가 속해 있는 조국에 적어도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것에 방점이 찍혀 행동하는 인물이다. 또한 조국보다 가족이 먼저다. 송지원 뿐만 아니라 무자비한 그림자의 살인 행각도 이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대의 보다는 자신의 가치관에 의한 '배신은 용서못해'라는 개인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당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간첩 잡는 반공영화처럼 보이는 이 영화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국가 있고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어야 국가가 있는 것이다.
장훈 감독의 첫번째 작품인 영화는 영화다도 꼽씹어 먹는 맛이 나는 영화였는데, 두번째 작품 의형제 역시 마찬가지다. 둘 모두 두 남자의 감정선을 잘 이끌어가며 버디무비의 정석을 보여주었고, 또한 대단히 맛깔스럽고 재미있다. 진중한 이야기를 하지만, 진행은 무겁지 않고 경쾌하다. 게다가 웃겨야할 때 확실히 웃길줄 알고, 몰아칠 때는 확실히 몰아쳐 준다. 초반 오프닝 이후의 그림자 추격작전에서의 아파트씬과 도로 추격씬은 정말 멋졌다. 앞으로 이 아저씨 이름의 영화는 무조건 신뢰하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여.
-. 결말은 아무래도 좀 생뚱맞긴했다. 해피엔딩이 딱히 싫은건 아니지만 (배드엔딩을 좋아하긴 한다만) 갑자기 톤이 너무 밝아져서 좀 유치하게 느껴졌달까. 너무 급작스럽게 그래서 그들은 정말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답니다라는 느낌.
-. 말해 무엇하랴만은 송강호의 연기는 정말 명품이다. 생활연기의 달인이라는 칭호가 괜히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본래 대사가 맛깔나는 것이 많았지만, 송강호의 입을 통해서 나오면 저 대사는 왠지 그의 에드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착착 감긴다. 우아한 세계의 연장선에서 그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도 좋을 듯하고.
-. 악역은 확실하게 무자비해야 맛이 산다고 생각한다. 그림자 캐릭터는 망설임이 없다. 작업전 피 비린내가 진동한다고 읊조리며, 총을 쏘아대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솜씨가 대단하다.
감독: 장훈
배우: 송강호, 강동원, 전국환, 고창석, 박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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