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증인 - 상 - 10점
김성종 지음/남도출판사

시골마을 한 구석에서 일어난 저수지 살인사건, 서울시내 복판에서 일어난 변호사 살인사건.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는 두개의 사건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사건의 간극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것이 6.25 전쟁으로부터 시작된 비극적인 사건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김성종의 '최후의 증인'은 철저하게 거대한 시류에 휘말린 가난하고 순진한 민초들의 시점으로 시대의 아픔을 극도의 비장미와 비극으로 승화시켜 최고의 장르문학으로 발전시킨 소설이다. 이념 전쟁으로 시작된 비극의 서사시는 그들이 전쟁의 원인 혹은 이념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게다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린치를 당하고 살아온 아픔을 그려낸다. 어떤이는 자신의 죄도 알지 못한체 음모에 희생되어 평생을 감옥에서 지내고, 어떤이는 살아있는 부모의 존재를 알지도 못한체 살아간다. 어떤 18세의 소녀는 공비 열명에게 매일밤 임신한-그것도 강간으로 인한 잉태-  몸으로 강간을 당한다. 기구한 운명을 살던 그녀는 자식의 병원비 때문에 술집에 나가 다시 남자들의 희롱거리로 전락한다. 이런 모습은 비애라기 부르기도 무엇한 미안함에 가까운 절망감이 숨어있다.

이 소설의 매력은 비극적인 이야기에도 있지만, 범인들을 쫓는 형사 오병호의 캐릭터에도 있다. 명문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지만, 형사의 길을 택했고, 형사들이 하는 짓거리들이 고문을 하는 등의 린치에 있는지라 직업과 인간, 도시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는 그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기까지 했다.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그이지만, 그는 이 사건을 정말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 이유는 사건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인물들이 너무 선량한 사람이거나 시대의 흐름에 가혹하게 짓밟혀버린 사람들이라 그들이 너무 불쌍해서 차마 내버리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들을 내버려두는 것은 자신도 다른 누군가들처럼 시대의 비정함과 무자비함을 눈감아버리는 것이기에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정에 유달리 목말라하는 그이기에 사건의 배후가 밝혀질수록 분노의 감정과 주체할 수 없는 연민이 쌓이다 못해 흘러넘친다. 어리거나 가난하거나 순박하거나 혹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즉 착하거나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삶을 얼마나 유린하는가 그는 치를 떤다. 그래서 자신이 밝히는 사건의 전말이 그들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생각하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시대라는 괴물을 내버려 둘 수가 없는 것이다.

김성종은 이런 비극을 검사와 변호사의 비리, 신문이라는 언론사의 횡포, 이념대립의 무가치함,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인간성 상실, 소수자를 억압하는 공권력, 돈을 위해 가족도 버리는 비인정 등 현재도 여전히 통용되는 비이성적인 상황들을 역사적인 현실과 기막히게 버무려 놓았다. 소설 '최후의 증인'은 정말 최고라고 밖에는 달리 붙일 수사가 없는 그런 소설이다. 마지막 장에 가서는 정말이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는 사회파 미스테리 소설이라고나 할까. 걸작이라는 말이 결코 아깝지가 않다.

덧붙여.
-. 최후의 증인은 이두용 감독과 배창호 감독에 의해 두번 영화화가 되었다. 배창호 감독이 만든 흑수선은 이 소설의 장점을 깡그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시했다. 로맨스를 부각시키는 것은 좋았지만,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낸 인물들을 그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밖에 표현해 내지 못했기에 더불어 축이 되는 형사 캐릭터의 매력도 사라져 버렸다. 소설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소시민의 땀냄새가 너무 반짝반짝한 네온싸인 빛에 묻혀버렸달까. 배창호 감독을 매우 좋아하지만, 흑수선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아쉽다.

-. 살인의 추억이 만들어낸 농촌 스릴러의 출발점은 최후의 증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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