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래셔 영화의 라인을 형성하는 고전 영화들 중에 히치콕의 사이코나 정말 많은 반전을 줄기차게 내보이다가 급기야 어린아이에서 살인이 끝이나는 마리오 바바의 블러드 베이나 80년대를 슬래셔의 황금기로 만들어준 존 카펜터의 할로윈 그리고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와 웨스 크레이븐의 나이트메어 그외에 정말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할로윈과 이전 영화들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어있는 캐나다 감독 밥 클락의 1974년 작인 '블랙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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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기숙사에 언제부턴가 신음소리를 내는 변태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학생들은 변태라고 치부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크리스마스를 맞아 파티를 하던 도중 전화가 걸려오고 야한 농담을 즐겨하는 알콜중독자 바비(마곳 키더)가 상대방에게 욕을 한다. Big wetty pretty pink cunt같은 저속한 농담과 신음을 내던 변태는 순간 돌변하며 바비에게 '널 죽일거야'라고 말을 하고 끊는다. 다음날 방학을 맞은 학생들은 하나둘 기숙사를 떠나고 클레어라는 학생이 실종이 된다. 기숙사에 남아있던 제스(올리비아 핫세)는 갈수록 심해지는 변태살인마의 전화를 받게 된다. 한편 경찰은 최근에 여학생 강간살해 사건으로 인해 클레어가 실종되자 주민들과 함께 수색작전을 펼치는데 클레어 대신에 또다른 어린이의 시신을 발견한다
. 경찰은 전화를 거는 변태와 살인마가 동일인이라 생각하고 전화를 추적하는데 그 전화는 다름 아니라 기숙사의 다른 방에서 걸려온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블랙 크리스마스는 살인마의 모습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 영화다. 살인마가 화면에 직접 등장하는 것은 눈 주위를 조명으로 비춘 어두운 실루엣이나 문틈으로 비치는 눈동자가 전부이고 살인마의 동선이나 살인장면은 모두 살인마의 시선으로 처리하고 있다. 끝까지 살인마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는 이 영화에서 이러한 연출은 굉장히 효과적이고 애매모호하게 끝나는 마지막 장면의 파장을 더 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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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전화를 통해서 공포를 전달하는 영화는 멀게는 마리오 바바의 블랙 사바스와 가깝게는 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이 있지만, 아마 블랙 크리스마스가 어떤 영화보다도 단연 으뜸일 것이다. 이 영화를 가장 빛나게 만드는 부분은 바로 전화 목소리인데 남자의 변태신음소리로 시작해서 여자의 목소리까지 혼합된 악마같은 음성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제스와 경찰은 범인이 한명이 아닐거라고 추정을 하기도 하는데, 밥 클락 감독과 여배우들의 목소리가 혼합된 이 목소리가 바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영화를 한층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로 만들어버리는 이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흡사 엑소시스트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데 이 점이 내가 이 영화를 사랑해마지않는 이유이다. 아마도 이는 이 영화 바로 전해에 만들어진 엑소시스트의 영향이 큰 것이라 생각한다. 오컬트 영화에서 소녀의 몸 속에 들어간 악마의 목소리가 하나가 아니듯이 마치 지옥에서 걸려온 듯한 블랙크리스마스의 전화 목소리는 그야말로 별 다섯개를 줘도 시원치가 않다. 게다가 살인마에 대한 실마리는 목소리가 전부일 뿐이기도 하다. 그래봐야 살인마가 다중인격을 포함한 정신분열증 환자일거라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실마리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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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제스의 남자친구인 피터가 살인마로 밝혀지고 종결된다. 하지만 카메라는 죽은 클레어와 관리인 맥부인이 죽어있는 다락을 비추고 기숙사를 점점 확대해서 잡는데 다락 어디선가 끽끽 거리며 웃는 살인마의 웃음 소리와 크리스마스 어두운 밤의 을씨년스런 바람소리와 함께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엔딩음악을 대신한 웃음과 바람소리가 무척 큰 여운을 남기는 이 마지막 장면의 분위기는 정말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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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피한방울 나오지 않는 슬래셔 영화지만, 그 분위기와 음산함이 물씬 풍기는 이 영화는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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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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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도 내용이지만 주인공인 올리비아 핫세와 마곳 키더만으로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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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원래 밥클락 감독은 이 영화의 후편으로 '할로윈'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려고 했단다. 존 카펜터의 할로윈 메이킹을 보면 그 이전에 할로윈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없어서 제목을 그렇게 정했다고 했는데, 밥클락 감독이 먼저 써먹었으면 걸작 슬래셔 영화의 제목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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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db
trivia를 보니 제작자가 영화의 결말을 제스와 클레어의 남자친구인 크리스가 공범인 것으로 하고 크리스가 제스를 죽이는 것으로 하려고 했다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제목: 블랙 크리스마스 (1974)
감독: 밥 클락

배우: 올리비아 핫세, 마곳 키더, 존 색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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