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ZOO - 8점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황매(푸른바람)
ZOO는 17세에 데뷔작인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라는 작품으로 점프소설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는 오치이치의 단편모음집이다. 문학계가 그만큼 활발하다는 증거겠지만, 일본은 무슨무슨 상이 저렇게나 많은지 모르겠다. 믿을만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ZOO에는 열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우직한 공포소설부터 범죄추리, 잔혹코미디, SF등의 장르까지 다양한 입맛을 선보이고 있다. 대부분 인간이 죽음에 직면하거나 심리적으로 극한에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기적으로 변해가는지 혹은 자신을 파멸시키는지를 묘사하고 있으며 그 저변에는 슬픔의 정서가 깔려있다.

첫번째에 수록된 Seven Rooms과 Zoo그리고 몇개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심리묘사보다는 상황을 설명하는것으로 진행이 되는데, 이것이 독자가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을 막는다. 역자후기에서는 오츠이치의 작품들이 영상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문자와 영상의 중간에 놓인 작품이라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반대의 인상을 받았다. 이건 내 얘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끙끙대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이 많이나서 가슴에 와 닿진 않았지만, 오츠이치가 보여주는 상상력만큼은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괴한에게 납치된 어린 남매가 감금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seven rooms',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그 둘의 모습이 모두 보이는 아들이 메신저 역할을 하는 'so far'. 여자친구를 죽여놓고 자신의 범죄를 외면하기 위해 살인자인 자기 자신을 뒤쫓는 'Zoo', 세상이 멸망한 후 유일하게 생존한 한 인간이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하고 외로운 최후를 맞지 않기 위해 사이보그를 만들어내는 '양지의 시', 타인의 신체와 정신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소년이 결국 세계를 멸망시키는 '신의 말', 엄마와 쌍둥이 동생에게 학대를 당하는 소녀의 이야기 '카자리와 요코',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신의 비밀을 알아낸 남편의 동생을 살해하는 이야기 'closet', 사고로 통증감각이 마비된 사내가 칼에 맞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상황에서 자식들과 벌이는 소동극 '혈액을 찾아라', 학대 받은 어린아이가 집을 나가 살인마가 되어 시체로 집을 지어 사는 '차가운 숲의 하얀집', 하이재킹 된 비행기 안에서 고통없이 죽을 수 있는 독약을 파는 세일즈맨과 젊은 시절 자신을 괴롭힌 남자를 죽이러가는 여인과 납치범이 벌이는 이야기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

모두 단편집에 어울리게 그만한 상상력을 제공하고 so~so~ 정도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데 이 중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머리가 잘리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시선이 마주친 사람들의 머리가 뚝뚝 떨어져 피바다를 이루는 '신의 말'과 첫번째 이야기 'seven rooms'는 정말 압권이다. 특히 납치된 뒤 죽음에 이르기까지 6일동안 공포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도록 구성된 seven rooms는 오랜만에 진정한 공포를 맛보게 해주었다. 만약 이 단편집을 직접 사서 보지 않더라도 70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니 seven rooms는 서점에서라도 꼭 읽어보길 강추한다.

첨언
-. 책의 띠지에 기재된 광고문구가 정말 재미있다. '이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일본문학의 충격'. 솔직한 것 같기도하고 멍청하기도 한 것 같기도 한 저 들이대는 문장이라니... 흡사 공포영화 광고에 '이 영화 정말 무섭다'라고 써놓은 효과와 비슷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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