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4 - 10점
이종호 외 지음/황금가지
2006년부터 시작된 한국공포문학 단편선이 이제 확실히 여름 선물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공포문학 단편선이라는 제목으로 새출발한 국내 공포문학이 장편소설로의 발전은 더딘 것 같아 조바심이 나기도 하지만 꾸준히 이어지기 어려웠던 공포소설이 단편선집으로 정기적으로 출판이 되니 고마움과 반가운 마음이 항상 먼저 앞선다.

한국공포문학 단편선 네번째 이야기에 실려있는 10편의 작품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어 쉽게 공감이 되고, 공감이 되는 만큼 몰입도도 높다. 비뚤어진 사회상을 보여주기에 씁쓸하기도 하고, 뒤틀린 가치관을 짚어주기에 뜨끔하기도 하고, 원초적인 공포를 전해 주기에 간혹 오싹하기도 하다.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공포만을 추구하지도 않고 풍자극의 면모도 보여주어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도 가지고 있는 한국공포문학 단편선4는 어쨋거나 이전의 시리즈도 그랬듯 일단 재미있다.

포문을 여는 '첫출근'은 시대적 배경이 모호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전후사정은 알길 없고 그저 전화의 지령을 통해서만 시스템이 가동되는 사회. 그러나 철수에게 전화해서 영희한테 꽃을 주라고 하세요같은 지령은 후에 나비효과식으로 발전하여 살인까지 이루어지게 만든다. 이번 단편선 중 가장 정치적이고도 도발적인 첫출근은 자신을 착취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른체 그것에 순응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혹은 짜놓은 시스템을 힘없는 민초들이 벗어나면 상상할 수 없는 가혹한 린치가 기다리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거대한 시스템에 종속되어 주체를 잃고, 의지도 잃고, 개성도 잃어버리는 그 과정을 짧지만 강력하고 현실성있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짧은 단편을 통해서 장편 못지 않은 다양한 얘기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미덕이 있는 작품이다.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인터넷의 익명성을 통해 번지는 마녀사냥의 폐해를 그려낸 '도둑놈의 갈고리'와 '배심원'은 독자들을 가장 섬뜩하게 할 것이다. 몰카를 소재로 한 '도둑놈의 갈고리'는 관음증적인 호기심이 한사람의 삶을 얼마나 간단하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호기심에 기댄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무책임한 시선은 그 사람을 칼로 직접 찌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도둑놈의 갈고리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몰카가 인터넷 상에서 포르노로 둔갑하여 퍼져나가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그것의 결과로 폭력이 발생하고 스너프로 전이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시선은 결국 칼날이라는 것을 피해자의 시점에서 생생하게 묘사한다.

'배심원'은 인터넷 마녀 사냥으로 한 소녀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책임감 없는 단죄 의식으로 스스로 자경단을 자처하는 키보드 워리어가 만들어내는 한줄한줄의 댓글이 어떤 방식으로 한 사람의 마음을 파멸시키는지, 그리고 쌍방향 소통의 강점을 가진 인터넷 문화가 사용자의 편견에 따라 얼마나 쉽게 일방향성으로 흐를 수 있는지, 또한 그것이 상상도 못할 폭력에 다름이 아님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마지막 작품인 '배수관은 알고 있다'는 공포장르의 영원한 테마인 죄의식은 인간의 기억을 왜곡하고 진실을 비튼다는 설정에 기러기 아빠의 애환을 접목시킨다. 기존에 존재하는 반전의 설정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가장 참신한 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창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설정들을 다른 주제와 결합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무엇이 만들어진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알려준다. 멋진 작품이다.

이외에도 에드가 엘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한국식으로 변주하여 괴담을 유려한 문학으로 탈바꿈 시킨 '플루토의 후예', 고부간의 갈등을 그리며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는 좀비와 같은 망령의 공포를 삐그덕거리는 한옥의 마룻바닥 공포로 보여주는 '불귀'가 재미있었다. 지구가 종말에 이르게 되자 폭력적인 본성이 표출되어 폭주하며 닥치는데로 사람들을 죽이는 십대들을 그리고 있는 '폭주'는 너무 익숙한 이야기였고, '도축장에서 일하는 남자'의 설정과 분위기는 좋았지만 이야기가 너무 모호한 감이 있었으며, 과학실험으로 인해 전지구적으로 발생한 도플갱어 이야기인 '더블'은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도플갱어라는 소재가 그저 소재 자체로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좀비를 소재로 한 '행복한 우리집에 어서 오세요'는 마치 좀비 영화의 일부분을 그대로 묘사만 한 듯 하여 아쉬웠다.

기대보다 뛰어난 작품들도 있었고, 조금 아쉬운 작품들도 있었지만, 어쨋거나 한국공포문학 단편선은 재미있다. 장르문학을 읽는 독자에게 재미있다는 1차적인 기쁨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있을까. 매년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작품집을 선보여준다는데 응원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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