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광의 공포 영화관김시광의 공포 영화관 - 10점
김시광 지음/장서가
관심사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영화 좋아하세요'라는 평범한 질문 정도는 오고가게 마련이다. 당연히 '예.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한 후 '공포영화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되돌리곤 한다. 그럴때마다 '어 이놈 뭐야?' 혹은 ' 이 놈 변탠가?'라는 시선을 받을 때가 많다. 직접적으로 '그런 것을 왜 좋아해요?'라고 물어오는 사람들도 많다. 초기엔 이런 회신에 날선 반응을 보일 때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내가 '공포영화 좋아하십니까?'라고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과 수다떨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지금껏 '네. 저도 좋아합니다'라고 흔쾌히 말하는 사람은 애석하게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들은 편견에서 기인한다. 편견은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일뿐 대개는 사실과 다르다. 아마도 이런 편견은 '공포영화'라는 단어에서 잔혹하고 잔인한 면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공포영화에 그런 면이 존재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말이다. 다른 어떤 것들과 마찬가지로 공포영화 또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수용하고 있고, 잔인하고 보여주는 1차적인 시각적 자극만을 추구하는 공포영화만이 존재한다면 공포영화라는 장르의 외피를 쓰고 있는 영화들은 모두 19금이 될 터이니까.

공포영화는 싸구려 저속한 장르. 자극적이고 가치 없는 것으로 폄하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공포영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다. 공포영화가 가진 철학이나 정치적인 함의를 제대로 풀어서 설명해 주는 매체 또한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하고. 내가 알기로 공포영화를 전문적으로 다룬 도서중 국내에 출판된 책은 99년에 나온 필립 루이에의 '고어영화-피의미학'과 작년에 출간된 '월하의 여곡성'이 전부이다. 공포영화에 대해 좀 더 심도있게 알아보려면 외서를 구입하는 길 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공포영화를 전문적으로 다룬 책이 나왔다. 김시광의 공포영화관.

공포영화를 좋아한다는 저자의 고백으로 시작하는 김시광의 공포영화관은 뱀파이어, 좀비, 몬스터, 오컬트부터 공포영화와 쉽사리 어울릴것 같지 않은 로맨스, 가족 같은 소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하고, 인간의 정체성과 이성의 한계라는 카테고리로 심도있는 공포영화 이야기를 다루기도 한다. 또한 중간중간 horror tip을 삽입하여 B급영화, 장르, 공포영화의 법칙, 감독판과 같은 여러 판본의 영화, 스너프 같은 소재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그리고 국내에서 거의 정식으로 소개가 된 적이 없는 고어 영화의 미학자 루치오 풀치 같은 저자가 사랑하는 이태리 공포영화 감독으로 부터 국내의 김성홍 감독까지 공포영화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감독들의 세계관과 그들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러니까 김시광의 공포영화관은 공포영화가 아우르고 있는 수많은 영화 내/외의 이야기들을 영화설명과 더불어 정말로 쉽게 설명해 주고 그것이 왜 싸구려가 아닌지, 아니 왜 무섭지만 재미있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충분히 제시해 준다.

김시광의 공포영화관은 공포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공포영화를 폄하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해 줄 것이고, 공포영화 애호가라고 핍박받았던 사람들에게는 변명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고,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흐뭇한 지식을 전달해 줄 거라고 장담한다.

덧붙여.
-. 이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공포영화는 DVD나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다. 국내 미출시 본이라도 아마존 등의 국외 사이트를 통해서 구입할 수 있다. 그렇게해서 구하기 어려운 영화라도 요즘은 볼만한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예전에 공포영화 관련 기사를 읽고 나서 보고 싶어 안달했던 것을 생각하면 최소한 감상의 기회를 거의 평준화시킨 인터넷의 발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 공포영화관은 책의 내용도 물론 훌륭하지만, 책의 매 페이지가 정말 정성스럽게 인쇄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왼쪽 페이지에 원본의 포스터가 실려있다면 오른쪽 페이지에는 포스터 혹은 스틸의 네거티브 인쇄가 되어 있다. 거의 모든 영화마다 이런 식으로 소개가 되어 있다. 정성스럽게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 읽을 맛이 난다.
 
-. 책 말미에 실려있는 '내가 꼽은 공포영화 베스트 100' 중 어느 영화를 봐도 다 재미있을거라 생각한다.

-. 마스터즈 오브 호러 중 담배자국의 설명 페이지에 담배자국이 아닌 마운틴로드의 스틸이 인쇄되어 있다. 다음번 찍어낼 때는 바꿔야할 듯.

-. 워낙 파워블로거시니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저자의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는 클릭하시면 방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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