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 로맨스는 범죄/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매니아들의 판타지 같은 영화다.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는 영화광 클레어렌스가 섹시한 콜걸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 포주를 죽이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얻게된 마약을 처분하면서 벌어지는 폭력. 간단히 말하자면 결국 경찰과 마피아와 영화광의 한판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범죄/폭력 영화광일 뿐인 클레어렌스가 마피아와 경찰과 과연 어떤 힘으로 대항할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영화속 인물들을 흉내내며 그들과 맞선다. 물론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고, 아무리 피를 흘려도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건 영화광을 위한 판타지니까. 그러니까 코흘리게 소년이 영웅본색을 보고 성냥개비를 이빨 사이에 물고 다니는  행위와 트루 로맨스 사이의 간극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영화광의 판타지 답게 트루 로맨스의 주인공은 무채색의 디트로이트에서 출발하여 꿈을 꾸듯 알록달록한 색들로 가득찬 꿈과 영화의 도시 헐리우드로 간다. 헐리우드에서 난장질을 하고 범죄자들의 최종 도착지인 멕시코에서 끝을 맺는다. 이 얼마나 즐거운 영화란 말인가.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영화속 인물이 현실로 걸어나왔지만, 트루로맨스는 영화 자체가 현실과 뒤엉켜 한바탕 꿈이 되는 영화다. 극장에서 생일날 소니치바의 영화를 혼자 보고 있던 클레어렌스 곁에 아찔할 정도로 섹시한 알라바마가 다가온다. 그가 극장에 오기전 바에서 한 여자에게 소니 치바의 영화를 같이 보자고 수작을 걸었다가 퇴짜를 맞은 후다. 알라바마는 쿵푸 영화를 지나치게 좋아하기도 하고 첫 데이트에서 만화책 얘기를 심각하게 들려주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하룻밤을 보낸다. 능력없고 빽도 없이 비디오 가게에서 알바를 하는 소년이 충분히 꿈꿀 만한 판타지다. 아니 영화를 좋아하는 나도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는 그녀가 다음날 새벽 사실은 난 콜걸이고 당신에게 접근한 것은 비디오 가게 사장의 지시였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판타지는 깨어지는 듯 했으나 그녀는 다시 나는 일부일처제를 지향하고 당신만을 사랑하겠노라고 뜬금없는 구애를 펼치고 그둘은 다음날 결혼한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클레어렌스의 판타지가 펼쳐지고 포주를 죽인 그에게 알라바마는 그건 너무 로맨틱한 일이라고 얘기해준다. 뻔뻔할 정도로 로맨틱하고 지나치게 판타지적이다. 다시 한번, 그래서 이 얼마나 즐거운 영화란 말인가.

트루 로맨스는 영화 자체도 재미있지만, 출연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환상적인 영화다. 주인공인 크리스찬 슬레이터와 패트리샤 아퀘트. 초반에 잠깐 등장하고 바로 죽어버리는 사무엘 L. 잭슨, 지금은 고든 청장역으로 선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당시엔 천상 악인으로 태어난 듯 싶었던 게리 올드만,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포스를 내뿜는 데니스 호퍼, 마피아 역할에는 이 사람 따를 인물이 없을 법한 크리스토퍼 월큰,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지만 엘비스 프레슬리의 체취를 강하게 보여준 발 킬머, 소파에 누워 하루종일 마약만 피워대며 제대로 찌질한 연기를 보여준 브래드 피트, 범죄 영화에 등장하지 않으면 어쩐지 서운할 법한 제임스 겐돌피니 그 외에도 지금은 고인이 된 크리스 펜이나 톰 시즈모어 같은 연기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각자의 이름값들도 대단한 배우들이지만, 연기 또한 발군이다. 특히 크리스토퍼 월큰과 데니스 호퍼가 시실리인과 무어인 얘기를 하며 대치하는 장면은 손에 꼽을 만한 명장면 중에 명장면이다.

트루 로맨스는 타란티노의 향취가 강하게 묻어나는 작품이지만, 토니 스콧이 감독을 했기에 지금과 같은 명작이 탄생할 수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영화광의 농담으로 가득하지만 리벤지 같이 예쁘고 뽀송뽀송하지만 피냄새가 진동을 하는 영화로 말이다. 벌써 수십번을 보았지만 볼 때마다 흐뭇한 영화다. 제목도 멋있다. 트루 로맨스.

제목: 트루 로맨스 (True romance, 1993)
감독: 토니 스콧
배우: 크리스챤 슬레이터, 패트리샤 아퀘트, 게리 올드만, 크리스토퍼 월큰, 발 킬머, 브래드 피트, 데니스 호퍼

덧붙여.
-. 트루 로맨스는 타란티노가 첫번째로 완성한 시나리오 답게 타란티노의 자아가 가장 많이 투영된 작품이다. 비디오가게에서 일하며 틈틈히 영화를 찍었던 영화광의 자아 말이다. 본래 그 자신이 감독을 하고 싶었지만, 시나리오가 5년 동안이나 팔리지 않는 바람에 어떻게든 일단 이름을 알리고 돈을 모아 감독을 하려고 푼돈으로 팔아버린 트루 로맨스의 감독은 지금처럼 토니 스콧에게 돌아갔다. 본래 트루 로맨스의 구성은 타란티노의 영화답게 연대기 순으로 구성된 영화가 아니라 시간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영화였고, 결말은 클레어렌스가 죽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토니 스콧이 연대기 순으로 변경하고 주인공을 살려주었다. 타라티노가 감독한 트루로맨스가 보고 싶기는 하지만, 트루 로맨스는 역시 토니 스콧이 감독한 지금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DVD에는 얼터너티브 엔딩이 수록되어 있다.

-. 트루 로맨스를 보고 패트리샤 아퀘트에 푹 빠져버렸었다. 자극적인 빨간색 혹은 형광색 브래지어에 호피무늬 점퍼나 쫄바지를 입은 모습이 어찌나 섹시하던지. 게다가 벰파이어를 연상시키는 튀어나온 송곳니의 매력을 거부하기는 힘들었다. 특히 이 영화에서 제임스 겐돌피니와의 대결 장면에서의 박력은 굉장했다. 변기 뚜껑으로 내리치고 스프레이와 라이터로 얼굴을 지지고 그도 모자라 총을 갈겨대고 금발머리를 피로 물들이고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 실로폰 소리가 똥똥 거리며 청아하게 귀를 자극하는 한스 짐머의 음악 또한 일품. 특히 you're so cool은 그 제목만큼이나 쿨~하다.

-. 삭제씬을 보면 잭 블랙도 나온다. 다시한번 느끼지만 그야말로 후덜덜한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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