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온-원혼의 부활강한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의 한이 저주가 되어 그것과 마주한 사람들에게 또다른 저주를 내린다는 주온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영화였다. 99년에 비디오판으로 시작된 주온은 저주에 걸릴 다양한 인물들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며 예외없이 죽이는, 뻔뻔할 정도로 우직하게 공포를 심어주는 영화였고, 저주에 걸린 사람이 빠져나갈길 없다는 설정과 그 저주가 또다른 저주를 낳는다는 설정은 기존의 귀신 영화와는 다른 참신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해석도 가능했다.

한사람이 품은 원한이 이유없이 무한대로 퍼져나가는 것에서 현대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묻지마 살인 혹은 테러에 대한 공포를 읽을 수 있다. 가야코 모자의 저주는 원한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복수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풀이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죽은 원혼이 또다른 저주가 되어 기하급수적으로 전염되어 퍼져나간다는 점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혹은 미디어에 대한 공포를 읽는 것도 어렵지 않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주온은 지박령 괴담 같은 기존에 존재하는 틀을 가져와서 귀신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주온의 가야코는 깜짝 놀래키는데 그치지 않고 쇼킹 효과를 준 후에 사람들을 어디론가 잡아가기도 하고, 귀신들이 좀체로 나타내지 않았던 (여고생의 턱을 뜯어버리는) 잔혹함도 보여주었으며 낮과 밤을 가리지도 않았고, 여자나 아이같은 약자들만을 표적으로 삼지도 않았고, 비겁하게 혼자있을 때만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는 기존에 알던 귀신의 모습과는 다른 신선한 것이었고, 이런 잔혹한 귀신 가야코는 시미즈 다카시 감독의 생활속에 존재하는 정적인 공간에서 최고의 효과를 발휘했다.

어둠이 존재하는 텅빈 공간을 무심하게 비추고, 등장인물을 밀어넣고는 어둠 속에 무언가 있다는 상상을 하도록 만든다. 들어보지 못했던 '끄어어억'하는 생경한 소리를 간헐적으로 들려주고, 인물은 소리의 진원을 따라간다. 신경을 곤두서게하는 음악이 점점 커지고, 등장인물은 어둠속에 몸을 들이밀고 미지의 공간에서 가야코가 등장한다. 가야코가 사라진후 영화는 아무일 없었다는듯 시침 뚝 떼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창문 밖에서 새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이렇게 주온은 일상 속에 존재하는 공간을 소름끼치게 묘사한다. 시간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식할 낮이기에 관객의 허를 찌르기도 한다. 무섭지 않다고 생각될 공간에도 조금의 어두운 공간만 있어도 관객은 상상하기 시작한다. 이불, 침대, 옷장, 다락, 방 구석, 책상, 의자, 식탁, 계단, 욕조 등 하여튼 가능한 생활 공간을 철저히 침투했다. 일상 속의 공간과 상상력의 결합. 그러니 무섭지 않고 버틸 재간이 있나.

아무튼 이런 주온이 탄생된지 10주년이 되어 새로운 저주가 만들어졌다. 하얀 노파와 검은 소녀 두편으로 이루어진 '주온-원혼의 부활'은 희생자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단편들을 나열하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귀신의 탄생 과정을 보여준다는 기존 시리즈의 외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얀 노파를 감독한 미야케 류타는 괴담신이대(괴담신미미부쿠로)에서 전신거울 에피소드를 연출한 경력이 있다. 거울을 보면 죽는다는 도시괴담에 농구공을 든 괴상한 노파를 등장시켜 극강 쇼크를 안겨주었던 재미를 잊지 못했는지 전신거울 괴담과 노파 캐릭터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주온과 합쳐버렸다. 그러니 괴담신이대를 본 사람들은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농구공 든 할머니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재미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영화의 시작 부분만 보면 주온이라기 보다는 그냥 괴담신이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15분 정도였던 주온에 비해 괴담신이대와 같이 5분 단타치기로 쇼크를 준다. 느릿하고 찝찝하며 정적인 맛이 조금 사라졌다고나할까. 그러나 괴담집을 극장에서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엔딩크레딧에서 주온의 체온을 느껴볼 수 있기도 하고.

검은 소녀는 하얀 노파보다 여러모로 아쉽다. 쌍둥이였지만 태어나지 못하고 죽어서 동생의 몸 속에 혹으로 남아있는 아이의 사념이 저주를 일으킨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주온 시리즈라고 보기에는 동떨어져 보인다. 특히 주온의 전매특허인 '끄어어어어' 소리에 대한 당위성이 검은 소녀에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튀어나온다. 가야코가 내는 '끄어어어'소리는 남편에게 두들겨 맞고 칼에 찔린채 쓰레기 봉투에 담겨져 죽기를 기다리며 쥐어짜낸 유일한 소리다. 그녀의 원한이 응축된 소리이기에 공포의 실체가 되기에 충분하다. 하얀노파의 할머니도 나름 목졸려 죽었기에 '끄어어어'소리에 대한 개연성은 제공되지만, 검은 소녀에서는 무의미하게 이 소리가 남발되어 다소 거슬린다. 그리고 주온의 매력은 공포의 실체에 대한 명확한 설명없이 공포의 감정을 강조하는 것인데 검은 소녀에서는 퇴마사라는 캐릭터와 슬픔의 정서를 끌어온다. 공포라는 것은 말로 설명하면 긴장이 떨어져 버리고 어설프게 슬픈 장면을 연출하면 우습게 된다. 장면장면은 나쁘지 않았지만, 길게 놓고보면 역시 아쉽다.

다시한번 어쨋거나 저쨋거나 주온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매력이 가득한 영화다. 그것을 10주년 기념작인 주온-원혼의 부활에서 이유없음, 무한증식, 해결책없음으로 대변되는 공포를 조금은 맛볼 수 있다. 부족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서 보는 주온은 하여간 즐겁다.

덧붙여.
-. 가야코의 저주는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결국 세계를 멸망시킬만큼 가공할 만한 것이다. 저주는 사라지지 않고 전염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정을 살려서 회로와 같은 묵시록적인 시퀄들을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 주온에 등장하는 '끄어어어' 소리는 시미즈 다카시 감독 본인의 목소리다.

-. 미히로와 타카기 마리아가 등장할 때는 AV팬이라면 영화에 도무지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다. 왠지 그녀들이 이유없이 막 벗을 것 같은 느낌. 미히로는 그닥 취향이 아니니 패스하고, 타카기 마리아는 영화에 등장하면 옛친구를 만난듯 반갑다. 도쿄좀비에서도 그랬고. 앞으로도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영화와 상관없는 원혼의 부활이라는 제목을 뭐하러 붙이는지 모르겠다. 그냥 하얀노파, 검은소녀가 더 낫다.

-. 주온-원혼의 부활의 첫번째 편인 하얀노파의 매력을 조금 느껴보시라고 괴담신이대의 전신거울 에피소드를 링크한다. 깜짝놀랄수 있으니 심장이 약하신 분은 재생하지 마세요.



제목: 주온-원혼의 부활 (2009)
감독: 미야케 류타, 아사토 마리
배우: 타카기 마리아, 카고 아이, 미나미 아키나, 미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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