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사랑에는 아둔하고 소심한 한 소녀가 사랑을 이루기까지의 마음속의 심경변화를 미래인, 초능력자, 우주인을 등장인물로 정보통합 사념채라는 정체모를 거대한 이론까지 등장시켜 흥미롭게 끌고간다. 어렵고 두려운 소통을 이루느니 차라리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 다함께 죽어 하나가 되자고 달려드는 이야기를 온갖 이론과 떡밥으로 치장한 에반게리온과 급을 다루기 힘들 정도로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연애라는 사소한 이야기를 전지구적으로 확장한다.
스즈미야 하루히가 우울해지면 세상은 멸망한다. 그래서 주변 인물들은 그녀를 즐겁게 하기 위해 혹은 기분이 나빠지지 않도록 사건을 만들고 조작한다. 연애를 하다보면 여자쪽에서 보통 재미있게 해달라고 조르거나 만사가 재미없다고 심드렁하게 우울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남자들은 머리를 짜내고 그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만약 실패할 경우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냉랭한 기운은 사실 지구가 망했다고 할만큼 쓸쓸할 때도 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그런 사소한 연애의 감정을 학원물을 외피로 하여 코미디와 추리, 공포, SF를 아우르는 복합 장르물로 탄생시킨 결과물이다. 따지고 보면 거대한 무언가의 본질은 시시할만큼 사소하고 간단한 것이기에 이런 식의 확장은 대개는 떡밥으로 치장되어 있지만,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다.
덧붙여.
-. 스즈미야 하루히에 등장하는 재미있는 인식론. 우주가 존재하는 것은 인간이 우주를 발견했기 때문이고, 내가 존재하는 것은 누군가 나의 존재를 원했기 때문이다. 역할이 무엇이건 간에 이런 인식론에서 보자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내가 원해서 생겨난 것이며 타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기에 사람은 결국 누구나 소중하다는 것.
-. 더빙판으로 보아서 미쿠루의 일본어 음성이 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의외로 우리나라 성우의 목소리가 더 좋다. 아유 간질간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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