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 어쌔신은 디워 이후로 참으로 간만에 만나는 엉망진창 영화였다. 웰메이드를 표방했지만(풋) 엄청나게 못만든 탓에 오히려 B급 영화의 감수성을 느끼게 해줬던 디워는 못만든만큼 오히려 재미가 올라가는 영화였다. 어설프게 못만들면 그냥 재미없는 영화로 끝나겠지만, 완전히 엉망이면 즐길 수 있는 구석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닌자 어쌔신은 닌자의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다른 것은 과감히 포기했다기 보다는 결과적으로 다른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에 개연성 따위는 없다. 당위성도 없다. 있다하더라도 얕다. 상대에 대한 복수 혹은 악감정은 서서히 구축되어 응축된후 폭발한다기 보다는 액션 영화에서 악인을 만들어야 겠으니 이런 상황을 하나쯤 넣어줘야지하고 어설프게 만들어낸다. 닌자의 존재를 알게된 요원과 그들을 감시하는 정부 집단도 있어야겠으니 등장시킨다. 주인공에게 위기도 있어야 겠으니 한번 잡혀준다. 모든 상황이 이런 식이다. 닌자 어쌔신 속에는 많은 상황이 등장하지만 그 상황은 파편화되어 나열되어 있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 영화 속에는 디테일도 없다. 컴퓨터 몇대랑 철문 하나 가져다 놓은 안전가옥의 풍경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닌자 어쌔신은 불필요한 것들은 절대적으로 생략하여 보는 이에게 스토리의 합리성을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영화 전체를 걸쳐 항변하는 영화이기에 단순하고 우직하다. 이런 영화이기에 닌자 어쌔신이 품는 오리엔탈리즘이 어떻고 얘기하는 것은 유치원생이 그려놓은 그림일기에서 예술을 찾으려고 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하고 의미없는 짓이다.

액션 또한 비슷하다. 한정된 공간. 어둠속에 무언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있고, 인물들은 두려움에 떤다. 사방에서 무언가 날아들고 인물들의 사지가 하나둘씩 잘려 나간다. 금새 피바다가 된다. 이치 더 킬러를 연상시키는 오프닝은 정확히 이 영화가 정교한 합을 구사하는 액션 영화가 아니라 일본애니메이션의 피칠갑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영화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대로 성공적으로 보인다. 적어도 피는 한바가지 흘려주니까. (오~~!) 이런 B무비스러운 영화의 시작은 끝까지 일관되게 B무비스럽게 나간다. 낄낄거리며 조롱하고 즐겁게 웃어줄 수 있다. 주인공은 악당을 쳐부수고 행복하게 살았어요라는 결말로 끝날 테니까.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이 영화의 액션이 기본적으로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 빠른 동작으로 치고 달리는 장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둠과 빛을 적절히 활용했으면 멋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과는 별개로 액션의 긴장감은 빵점이다. 도무지 쟤가 왜 저렇게 애를 쓰고 있는건지 이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느긋하게 팝콘을 던지며 감상할 수 있다.

닌자 어쌔신은 감독이 의도했다고는 생각치 않지만, 어쨋든 정말 못만든 B급영화다.  너무 못만들어서 웰메이드 영화를 비웃는 것처럼 보여 즐거워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극한으로 치달으면 의도치 않게 미덕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디워 이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영화이기도 하고. 웃으면서 극장을 나서게 만들 수 있는 영화다.

덧붙여.
-. 비의 몸매는 헉할 정도로 멋있었지만, 스크린에서 만나는 그의 얼굴은 참 없어보였다.

-. 스크린에서 만나는 사지절단 액션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즐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오프닝과 비가 첫번째 살인을 하는 화장실 시퀀스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 세탁소 주인이 보는 TV에서 무슨 프로인지 모르겠으나 한국 TV 사극이 나온다. 헐리웃 영화에서 전설의 고향 스러운 영상을 보게 되니 상당히 반갑다. 비가 나오는 영화에서 앞으로 이런 식으로 한국을 만나게될 상황들이 늘어날테니 반가운 마음이.

-. 비가 '미카, 미카'를 연발하는 장면에서 마눌님과 함께 '빵' 터졌다. 너무 웃겨서 밖으로 나가서 웃다가 다시 들어올까 생각했을 정도. 아~ 이건 비의 잘못은 아니다. 그 대사는 누가 했어도 빵 터졌을 거라고 생각.

-. 엉망이라 즐겁기는 했지만, 매트릭스나 브이 포 벤데타 같은 영화들을 만들었던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이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한편으로 신기하기도 했다.

제목: 닌자 어쌔신
감독: 제임스 맥테이그
배우: 비, 릭윤, 나오미 해리스, 쇼 코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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