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게 생긴 놈.

Record? 2008. 2. 15. 12:44

나는 종종 운동 잘하게 생겼다라는 말을 듣는 편인데, 이런 뉘앙스로 운을 떼는 이유는 운동을 못하기 때문이다. 어릴적에는, 정확히 얘기하자면 중학교2학년 때까지는 항상 반대표 축구선수였을만큼 뛰어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공을 사랑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음주를 시작한 다음부터 운동을 딱 끊었다. 고등학교3년 동안 체육시간은 술마신 속을 달래기 위해 벤치에 누워 잠자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오늘은 볕도 좋은데 공을 한번 차볼까?'라는 마음에 친구들 틈에 어울렸는데, 3년동안 쓰지 않은 나의 발은 말그대로 '개발'이 되어 있더라. 어쩜 그렇게 공에 발을 맞추지도 못하는지... 그랬으면 오기로라도 다음부터 운동을 열심히 했어야할 터인데 난 이때부터 축구가 싫었었다. 월드컵을 한대도 별 감흥이 없을 정도니 뭐. 덕분에 군대에서는 축구를 피하기 위해 온갖 잔꾀는 다 부렸고, 결국 일병 이후로는 축구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하다. -_-

가끔 회사에서 체육대회 같은 것을 하면 '엇! S군은 운동 잘 하게 생겼는데 한번 나가보지!'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등에 식은땀이 다 난다. 쪽팔리단 말이다. 차라리 '자네는 몸을 보니 꼭 운동을 좀 해야겠어'라는 말을 들으면 좋을텐데 말이다.

작년에 체육대회 때는 '엇! S군은 달리기를 잘할 것 같으니 꼭 계주에 나가야돼!'라며 다짜고짜 이름을 적어갔더랬다. 결국 복날에 뒷동산으로 끌려가는 멍멍이 마냥 할 수 없이 출발선에 섰고 그날 나는 다리에 쥐가 나서 다섯바퀴를 넘게 굴러야 했다. ㅜㅜ

좀 오버스러운 얘기지만 사람이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말은 이런 때에도 통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S군은 부자야'라고 지레 짐작해 버리는 친구들과 선생님 덕분에 학교 다니는 것이 유달리 힘들었던 적도 있다. 다같이 못살고 없이 사는 친구들인데 나를 그렇게 밀어내고 나면 나는 쉽게 그들 사이에 다가갈 수 없었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도 않은데 말이다. 반장인데 돈 안갖고 온다고 '짝'소리가 그렇게 시원할 수 없게 따귀를 올려부치던 선생님도 있었는데, 돈이 없는걸 어쩌라고~. 기실 있어도 안 갖다 줬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반장을 하는 것이 무척 싫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자꾸 뽑아 놓으니 이걸 어째. 이래저래 힘든 어린 시절이었다.

요즘도 종종 듣곤하는 '어~ S군은 요거조거 잘하게 생겼는데'라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을 수가 없다. 그냥 좀 지켜보고 '아~ S군은 그런것도 할 수 있구나'라고 진정한 내 모습을 좀 바라봐주면 안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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