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s in the details.
삼악도 -
김종일 지음/황금가지
'사자들'이라는 소설로 상을 받았지만, 책 자체는 세간에 잊혀지고 게다가 청소년유해딱지까지 붙어 작가로서의 삶을 거의 포기할 지경에 이른 오현정. 돈에 쪼들리고 쪼들리다 영화사 메피스토로부터 박광도 감독의 장편 입봉작 '흡혈귀'의 각색의뢰를 맡게 되고 좀비러스한 외모와 성격을 가진 박광도와 스텝 한명과 함께 삼악도라는 무인도에 가까운 외딴섬으로 향한다. 그리고 '미져리' 스러운 상황이 벌어지면서 오현정은 흡혈귀 시나리오 완성을 위해 온갖 고문과 린치를 당한다.
사자들, 소설, 작가, 영화, 메피스토, 흡혈귀, 시나리오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라는 키워드만 나열해 놓고 봐도 대충 김종일의 삼악도가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감이 온다. 그리고 3년만에 나온 삼악도는 장편 데뷔작이었던 몸에 가까운 우직한 공포소설이다.
우리는 종종 자본가들 혹은 지배세력을 서민들 피빨아먹는 놈들이라고 얘기한다. 소설 삼악도는 그 피 빨아 먹는 서민들의 거머리, 착취자들을 '진짜' 흡혈귀 괴물로 그린다. 이런 식의 비유의 전환은 김종일의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설정인데, 예를 들어 불같이 화를 낸다라는 말처럼 어떤 소년은 화가나면 타인을 불태워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다. 공포장르 속에 등장하는 이런 상징성은 그것을 좀 더 심오하게 만들기도 하고, 초현실적인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기능도 한다. '죽도록 열심히 했다' 말이 정말로 죽을 고비를 넘는 장면으로 바뀌어 질 때 장난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는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지 새삼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한 말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삶이 실제로 힘들다라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양심의 가책이 손톱이 빠지는 고통으로 표현된 이전작 손톱에서 처럼, '삼악도'에서 창작의 고통이라는 심리적, 비유적 고통은 신체가 훼손되는 직접적인 고통으로 통각, 시각적으로 전환된다. 보이지 않는 고통이라는 실체를 눈에 보이게 표현하는 것이 고어의 한 기능이라고 한다면 김종일의 소설은 국내 소설에서는 보기 드물게 그것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신체 훼손을 갈 때까지 밀어부치는 힘이 있는 소설이다. 또한 극도로 잔인하거나 혹은 괴물이 등장하는 초현실적인 장면이 등장하더라도 그것의 기원은 '돈'으로 얼룩진 창작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기에 김종일의 소설은 판타지가 되지 않는다.
김종일의 소설에 등장하는 또하나의 비유. 영화를 통한 비유. 공포장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작가이다 보니 상황 묘사에 대해 어떤 영화 속의 블라블라와 같았다라는 식의 문장이 종종 등장한다. 이런 식의 다른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치의 인용과 주인공이 작가라는 점 그리고 작가가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를 각색한다는 이야기가 어우러지면서 이 소설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소설로 탈바꿈한 거대한 영화평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구조를 가진다. 그러므로 '아마도' 공포영화에 애정을 가진 이들은 이 책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명언을 가진 비디오드롬으로 소설은 마무리되고 있으니까.
작가의 말대로 손톱이 꽉 짜여진 틀속에서 독자를 몰아가는 스릴러 소설에 가까웠다면, 삼악도는 작가 개인의 삶(?)이 더욱 많이 반영되어 있어서인지, 최초의 아이디어에 그간 가지고 있던 분노에 가까운 상념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게 뻗어나가는 공포에 충실한 소설이다.
덧붙여.
-. 얼마전 생활고에 시달리다 '남은 밥이랑 김치 좀 달라'는 쪽지를 유언 아닌 유언으로 남기고 사망한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를 생각하다 보니 참으로 씁쓸하게 읽혀졌다.
-. 현대 사회의 계급으로 발생하는 폭력을 그리는 김종일의 작품답게, 폭력은 대물림 된다는 얘기도 곁들이고 있다. 온갖 폭력에 시달리다 살아남은 자도 본인이 권력을 갖게 되면 스스로 흡혈귀가 되어 버린다. 대한민국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이미 개에게 던져 줘 버린지 오래인게지.
-. 김종일은 아마도 고어를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국내 유일의 작가이지 싶다.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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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들은 대개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무신경하고 까칠한 사람에게 여러모로 신경을 더 쓴다. 눈치를 더 많이 본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면 결국 까칠한 사람을 좋아하던 하지 않았던 간에 최후에는 까칠한 이가 뭔가를 하나 더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왕왕 목격하게 된다. 말을 해야 잘 해주지 혹은 사랑도 말을 통해서 전해야 한다라고 얘기들을 하고 동감하기도 하지만 오래도록 곁에 있는 사람이라면 말을 하지 않아도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그이의 진심을 알아차릴 수는 있는 법이다. 그러니 잘해주는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주도록 신경쓰는 관계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겠다. 우리 딸도 그랬으면 좋겠고.
2. 나는 마눌님의 말을 잘 듣고 잘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마눌님의 입장에서는 한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나보다 더 잘하고 사려깊은 사람도 널려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주위에서 나를 보고 마눌님에게 너무 잡혀 사는 것 아니야?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여자도 그런 사람이 있다. 헐~. 아무튼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것이 한가지 있는데 내가 마눌님께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마눌님도 나에게 잘하려고 항상 노력하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 물론 그런 계산적인 생각으로 사랑이 시작되지는 않지만 서로 잘해주려고 노력하면서 관계가 무르익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마눌님은 항상 나에게 밥을 차려주면서 '우리 신랑 맛있는거 먹여야 하는데, 미안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마눌님이 계란 하나만 부쳐줘도 정말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다. 왜냐하면 마눌님이 나한테 뭐라도 하나 더 주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의 관계를 부러워하거나 충고를 하기 보다는 내가 관계속에서 그이에게 뭘 어떻게 해주고 있나하는 모습을 돌아보는게 항상 우선이 되어야 하겠다. 우리 딸도 그랬으면 좋겠고.
3.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정말 신기하다. 어제는 하지 않았던 행동을 오늘은 한다. 그러니까 어제는 뒤집기만 했는데 오늘 보니 뒤로 기어 간다거나 또 내일 보니 엎드려서 뒤를 돌아본다거나하는 그런 세세한 행동의 발달이 몰라보게 빠르다. 모든 성장이 끝나고 이제 조금씩 노화되어 가는 사람들이야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다르지 않지만 오늘 본 아이의 모습은 내가 보는 그 상태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매번 보면서 대견한 마음도 들지만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이 시리다. 아이가 빨리 자라서 말도 하고 아빠에게 조르는 모습을 얼른 보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옹알이하는 지금의 모습이 사무치게 그리울 어떤 날을 생각하면 벌써 오늘이 그립게만 느껴진다. 우리 딸아, 아빠의 가슴은 사춘기 소녀인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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