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 6점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황매(푸른바람)
오츠이치의 단편집 ZOO를 읽고 이런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가진 작가가 17세에 쓴 데뷔작이 어떤 내용인지 몹시 궁금했고, 과연 장편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솜씨는 어떨까하는 마음으로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를 골랐다. 일단 장편이 아니라 두편의 중편(‘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와 ‘유코’)이 실려 있어서 실망 아닌 실망을 했지만, 17세에 이런 소설을 쓴 '천재작가'라는 말에 어느정도 공감을 하긴 했다. 나이 어린 작가가 쓴 소설이라고 해서 점수를 더 줄 필요는 없지만, 읽고나서 '어린 친구가 이런 묘사도 가능하구나'라는 감탄이 들긴했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 친오빠인 켄을 좋아하는 9살 야요이는 자기도 켄 오빠를 좋아한다 친구 사쓰키의 고백에 나무 위에서 떨어뜨려 사쓰키를 죽이게 된다. 사쓰키의 죽음을 목격한 켄과 야요이는 엄마에게 야단맞게 될까 무서워 사쓰키의 시체를 숨기게 된다. 하지만 켄의 행동은 단순히 엄마에게 야단맞기 싫어서라기 보다는, 소설에서 자세히 묘사되진 않지만 좀 더 근본적인 어둠을 갖고 타고난 아이이기 때문이 맞을 것이다. 영리한 켄은 사쓰키의 행방불명이 최근에 마을에서 발생한 일련의 아이들 실종사건으로 처리될 것을 알고 있었고, 이때부터 사쓰키와 야요이는 부모와 조카언니, 마을 사람들, 경찰의 눈을 피해 사쓰키의 시체를 처리하려고 밤마다 이리저리 시체를 들고 나른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죽은 사쓰키의 나레이션으로 진행이 되는 것이 특이한데, 어린 아이가 자신을 죽인 친구들이 시체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을 묘사하는데 감정을 싣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관조적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독자는 이 사체처리 소동극을 분노의 감정이 아니라 그들이 들키지 않게끔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어 자연스레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이 부분이 바로 이 소설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한다. 개인적으로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화려한 하늘 아래서 야요이와 켄, 죽은 사쓰키의 시체 그리고 또 한명의 인물이 놓여있는 풍경은 슬프면서도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

유코
-. 키요네는 마사요시라는 명문집안에 하녀로 들어가는데 이집의 분위기기 심상치않다. 매일 주인부부 내외의 식사를 준비하고 설겆이를 하고 빨래를 하는데, 키요네는 마사요시의 부인인 유코를 한번도 보지 못한다. 방안에 있다고 얘기는 하는데 심지어 그녀의 목소리조차 한번 듣지 못한다. 그러던 중 전에 일하던 하녀로부터 마사요시의 부인이 2년전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마사요시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키요네는 부인의 정체를 밝히고 안쓰러운 마사요시를 편안하게 해주고자 한다. 유코는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에 비해 비교적 내러티브가 탄탄하다. 키요네는 마사요시 집안의 기괴한 공기에 동화되어 자신의 불우한 과거를 끊임없이 회상하고 마사요시 집안의 뒤틀린 내력에 대해서도 인간의 탐욕스런 욕망과 업보를 씌우며 마지막에 반전까지 두고 있다.

나는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를 더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것은 내가 평범하지만 잘 짜여진 이야기보다 우연에 기대더라도 기괴하지만 불온한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이야기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오츠 이치의 이 불온한 상상력은 ZOO라는 단편집 맘껏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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