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치의 마지막 연인하치의 마지막 연인 - 8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민음사
할머니가 만든 종교단체-자비의 마을에서 생활하는 마오는 교인들과 문란한 성관계를 가진 엄마 덕택으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할머니가 죽자 교인들은 새 교주를 뽑고자 작은 공동체 속에서 비열한 암투를 벌이고 이에 신물난 마오는 자주 가출을 한다. 할머니가 죽기전 '넌 인도에서 온 하치라는 소년의 마지막 연인'이 될거란 예언을 하고 마오는 하치라는 남자를 정말로 만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하치의 마지막 연인'은 열다섯살 소녀의 성장통을 그 나이대의 소녀가 일기장에 제멋대로 지껄이듯 끄적여놓은 유치한 소설이다. 중반까지 이 소녀가 될데로 되라지라는 신념 아닌 신념으로 적어놓은 일상은 문장이 너무 끊어져 이게 무슨 글일까 싶을 정도로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불안정한 소녀의 심리가 차츰 안정되어 세상을 이해해가는 모습은 꽤나 즐겁게 다가온다.

마오를 둘러싼 주변인물과 생활은 불우와 불안, 불량 그 자체이다. 하지만 마오의 1인칭으로 진행되는 소설을 요시모토 바나나는 잔잔한 일본영화들처럼 그녀의 생활을 마치 타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담담하게 묘사한다. 고통은 언제나 한발짝 물러나서 바라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사춘기 소녀가 그시절을 견뎌가는 방법이 소설의 문체로 나타난다고할까.

제목이 암시하듯 이 소설에서 마오는 필연적으로 행복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마오의 마지막 연인이 아니라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기에 마오는 하치를 통과하여 성장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인도에서 수행의 길을 택한 하치는 속세의 미련을 던져내기 위해 평생 몸부림치며 살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은 헤어짐에 임박하자 찌질한 모습을 보이는 하치를 통해 알 수 있다.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 없는 소설이지만, 사람들이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몇몇 문장들일 것이다. 마오가 하치를 보며 생각하는 애절한 감정들. 저 사람이 내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고 별것아닌 일상속에 겪는 말다툼도 해보고 싶고, 가끔은 그 사람이 싫어져보고 싶기도 하고... 같이 있을 커플이라면 싫어할만한 일까지도 해보고 싶어 안달하는 마오의 사랑에 대한 감정은 '사랑한다면 이렇게' 같은 교과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타인의 생각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하는 순간 폭력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마오의 가치관은 사랑하는 사람이 가져야할 기본 덕목이지만,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큼 간단하지만 어려운 일이 어디있을까. '하치의 마지막 연인'은 그런 감정들을 잘 보여준다.

분량이 얼마되지 않아 전철안에서 세번을 읽었는데, '하치의 마지막 연인'은 읽을 때마다 한심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고 진중하기도 하고 산만하기도 하고 정갈하기도 하고 제멋대로 갈겨놓은 듯 싶기도 하고 심사숙고한 문장인가 싶기도 한 딱 사춘기 소녀의 일기같은 매력이 펄떡이는 소설이다.

첨언.
-. 첨 보고 이거 뭐지 일본의 귀여니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모든 문제는 가족으로부터 발생한다'라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말이 인용되어 있어서 관심이 증폭되었다는 말은 써두어야겠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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