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은 어떤 종류의 책을 가장 좋아하세요?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면 적어주세요.
-. 공포소설과 성장소설을 좋아합니다. 성장소설이라는 것은 사춘기 소년이나 어린아이가 주인공일 수도 있지만 모든 소설을 이 범주에 넣을 수도 있겠죠. 사람은 누구나 사건을 계기로 성장하기 마련이고 성장이라는 것은 평생을 걸쳐 해나가야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아주 많이 착하고 앙증맞은 것들도 좋아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극단적인 공포소설도 좋아합니다. 독자에게 논리적인 생각을 강요하는 추리소설보다는 극한의 상황 속으로 몰아넣는 공포소설이 더 좋고요. 극한의 상황에 몰릴때 인간의 진실한 모습이 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시작된거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이 장르의 매력이기도하죠.

2. 올여름 피서지에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피서지에서는 장편을 읽기보다는 단편을 읽는 것이 시간상 이로울 것이고 여름이라면 사지절단이 제격이죠. 요즘 게임하느라고 통 책을 못 보고 있는데 피서지에 갈 때는 게임기를 잠시 꺼두어도 좋겠네요.

3.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혹은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 요즘에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딱히 꼽기가 어렵지만 예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모든 작품들이 판타지 성장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성장소설임에도 가슴을 공허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죠. '나'라는 주인공들은 모두 무언가를 넘어서려고 안간힘을 쓰고 기실 성공한듯 보이기도 하지만 그 성공이라는 것이 세상에 대한 체념에 가까운 인정인 경우가 많아서 슬프고 아득한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나이가 좀 들고보니 그런 감정이 썩 달갑게 다가오진 않더군요.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천명관입니다. 이야기를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발군이더군요. 어떤 사소한 것도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켜켜이 쌓이면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반전 영화중에 와일드씽은 그 식상한 반전을 거의 5분마다 한번씩 내놓고 있는데 관객이 반전에 지쳐갈 즈음에도 반전이 일어나는지라 그냥 넋놓고 그래 저정도면 박수 쳐주자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요. 요컨데 뚝심이라고 불러도 좋을성 싶어요. 천명관은 사람을 지치게 할 정도로 이야기를 담아내면서도 그 속에 함몰되지 않고 요리조리 맛깔나게 배치하는 솜씨가 일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작품이 너무 기다려집니다.

4.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 딱히 좋아하는 인물은 없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뭘 하나 꼽기가 어려워지나 봐요. 좋아한다기 보다는 기억나는 인물이 있다면  천명관의 '고래'에서 금복입니다. 타고난 색기와 지략으로 촌구석에서 도시의 큰손으로 성장하지만 그 자신의 욕망에 함몰되어 '성'까지 바꿔버린 그녀의 모습은 굉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모자란 남편을 달래기 위해서 젖을 물려주는 장면 때문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뭐랄까 남성과 여성은 어떻게 흘러가도 결국 다다른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로틱하면서도 순결하고 굉장히 애닮픈 느낌이 들었습니다.

5.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인물 /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이상형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었다면 적어주세요.
-. 하루키의 소설 중 '1973년의 핀볼'에 등장하는 '나'와 가장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얘기도 종종 듣곤 했지만 이제는 그다지 비슷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항상 과거에 대한 미련을 안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그런것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어요. 예전보다 나 자신을 조금더 좋아하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형은 딱히 없습니다.

6.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은?
-. '고어 영화-피의 미학'이라는 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프랑스 도서를 번역한 거라 영화 제목이나 인명의 표기가 거슬리는 것이 많지만 공포영화가 단순히 시각적 쾌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국내 유일의 공포영화 관련 번역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이걸 선물한다는 것은 너무 땡깡 부리는거 아닌가 싶기는 하네요.

피의 미학이 문학작품에 벗어나니 문학작품을 꼽으라면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극단적인 섹스에의 탐닉은 언제나 슬픔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육체란 참으로 묘해요. 사실 이 작품을 예전에 어머니께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7. 특정 유명인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누구에게 어떤 책을 읽히고 싶은가요?
-. 그의 기품있는 행동을 보면 책을 읽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명박씨에게 책을 한권 선물하고 싶군요. 이청준씨의 '당신들의 천국'을 권합니다. 소록도의 나병환자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인데 병원장이라고 불리우는 지배자가 좋은 시설과 환경을 환자에게 제공하려고 노력(?)해요. 제목처럼 그것은 당신들의 천국이죠. '선'이라는 것의 평가는 베푸는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는 쪽에서 하는거죠. 대한민국을 당신들의 천국으로 만들려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공포와 분노로 전율하게 되네요.

8. 작품성과 무관하게 재미면에서 만점을 주고 싶었던 책은?
-. 마쓰오 유미의 '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유령인 여인을 사랑하면서 그녀에 대해 알아갈수록 보이지 않던 그녀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게 되고 이내 그녀의 온전한 모습을 보았을 때 사라져 버린다는 설정이 어느 로맨스 소설보다 뜨거웠고 애절했습니다. 그녀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과정도 흥미로웠구요. 원작의 제목은 '기우제'인데 국내 출판 제목이 마음에 쏙 들어요. 누가 누구를 사랑하든 사랑은 언제나 사라지고 있는거죠. 그러니 사랑하는 동안 최선을 다할 수 밖에요. 아. 물론 재미있었습니다. 짧은 분량이라 금방 읽히지만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가더라구요.

9. 최근 읽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 문학작품에서 기억나는 문장은 딱히 없지만, 그래도 아쉬우니 그 외에서 남기자면 꽤 오래전에 읽었는데 '목숨 걸고 일한다'라는 책 속에 '혼을 담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잊혀지지가 않네요. 왜냐하면 혼을 담은 노력도 배신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거든요.

10. 당신에게 '인생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 에릭시걸의 닥터스. 중학교 때 읽고 푹~ 빠져 버려서 의사가 되기 위해 미친듯이 공부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의사는 되지 못하고 미치기만해서 이러고 있네요. 쿨럭. 그래도 소설은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재기발랄한 문장들 속에 청춘남녀의 삶에 대한 진지하고 뜨거운 열망은 지금도 가슴에 뭔가를 타오르게 만드는 힘이 느껴져요. 활활 타지는 않아도 말이죠. 그게 어딥니까.

어서 빨리 밀려있는 책들을 읽어야될텐데.... 욕심은 많아서 읽지는 않고 쌓아두기만 하는 책이 이제는 쓰러질려고 하는구나.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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