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식인 룸메이트나의 식인 룸메이트 - 10점
이종호 외 9인 지음/황금가지
한국공포문학 단편선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나의 식인 룸메이트라는 단편 제목을 표지에 넣고 있어서 아닌줄 알고 지나칠뻔 했지만, 조그맣게 한국공포문학단편선3이라고 쓰여져 있는걸 보니 반가운 마음에 지갑이 먼저 열린다. 2006년 부터 매년 발간되어 이제 이 단편선은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듯 하다. 도서든 영화든 공포라는 장르를 뒤집어쓴 것들이 척박하기 그지없는 대한민국 토양에서 매년 이렇게 나와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첫번째는 06년11월이었고 작년과 올해는 8월 즈음하여 출간되었다. 매년 가는거 납량특집 선물로 여름마다 정기적으로 나온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공포관련물을 '여름'에 못박아 넣는 것은 불만이지만 퀄리티 있는 공포소설이 매년 여름 찾아온다고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든든해져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9금 딱지가 붙었던 첫번째 단편선의 피칠갑에 비해 그를 의식한 듯 얌전해진 두번째 방문에 이어 세번째도 피가 진득한 이야기보다는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면서 공포문학임을 드러내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문장도 세련되어지고 이야기도 고심한 흔적들을 엿볼 수 있어 단편선 자체가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히 받을 수 있다. 1년동안 퇴고에 퇴고를 거듭했다는 작가들의 말은 거짓이 아닌듯.

사회의 부조리한 이면들을 들추어냈던 전권들에 비해 이번 단편선은 '공포'라는 장르적 재미에 보다 충실하다. 물론 전편이 똑같은 색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다는 말이다. 개개 작품들의 소재는 머리를 꽝 울릴만큼 신선한 것은 없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벽장속의 괴물이 등장하는 '나의 식인 룸메이트'는 흡혈식물대소동(1986)을, 공포는 인간의 내부에서 발생한다는 '공포인자'는 이벤트호라이즌(1997)을, 정체모를 붉은비를 맞고 좀비로 변해버린 동물들의 습격을 받는 '붉은비'는 새(1963)를, 교통사고 후 주변사람 모두 사망한 그의 애인의 존재 자체를 기억하지 못해 공포에 잠식되어 가는 사나이의 이야기인 '선잠'은 더 로드(2003)를, 동네 아이들과 언니가 정체 모를 흉가에 홀려 귀신이 되어가는 '담쟁이 집'은 도시 괴담과 저주받은 도시(1993)를 떠올리게 했고, 불만족 고객에게 시달리는 마트 직원이야기인 '스트레스 해소법'은 프랑켄후커(1990)가, 이민간 미국에서 도박으로 전재산을 날려버린 남편과 닥쳐오는 얼음폭풍속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이야기인 '얼음폭풍'은 미스트(2007)가 스쳐지나갔고, 염력으로 타인을 태워죽이는 소년이 등장하는 '불'은 그레이브 디거나 CSI에 등장했던 인체발화 범죄를 떠올리게 했고, 미모의 여인과 결혼한 뒤 가족들 모두에게 사고가 생기는 '은혜'는 2005년 실제 있었던 엄모여인이라는 사이코패스 여인을 그 소재로 했다.

그래서 식상하냐고? 첫머리 밝혔듯 한국공포문학단편선 3은 '장르'적 재미에 보다 충실한 작품이고 이는 뻔한 전형적인 공식들을 잘풀어냈다는 이야기라는 말이다. 공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하위장르들의 클리셰들을 한국이라는 상황에 맛깔나게 끼워맞췄다고나할까. 그래서 이번 단편선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중요함을 지닌다고 생각하고 다음 단편선에 대한 기대치를 더욱 높여버렸다.

괴담인가라고 생각했다가 오디션(1999)스러운 결말을 보여준 이종호의 '은혜'는 역시!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 불같이 화를 낸다는 말처럼 분노가 만들어내는 불꽃이 타오르는 김종일의 '불'은 이런 센스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안하무인의 치가 떨리는 꼴보기 싫은 고객을 드릴로 뚫어버리는 엄성용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읽으면서 스트레스가 다 해소되었다.

이전에 비해 고른 퀄리티를 보여준 한국공포문학 단편선3은 명실공히 한국대표 공포문학이다. 절대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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