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나 가장 무서운 영화 순위에서 빠지지 않는 윌리엄 프레드킨 감독의 1973년작 엑소시스트.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국민학교3학년 때 였다. AFKN에서 심야에 방영해 주던 공포영화를 본 순간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공포로 얼어붙었다. 악마가 씌인 리건이 토하고 찢기고 자해하는 모습은 사실 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혹은 대사를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더 공포스러웠던 것 같다. 그 후 이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서 매일 아침 신문을 뒤적이며 재방영 일자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결국 비디오로 녹화에 성공하여 수십번을 봤던 것 같다. 당시 가지고 있던 파나소닉 비디오에 슬로우비디오 기능이 있어서 후반부 악마의 얼굴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장면도 여유롭게 볼 수 있었다. 뜨악하면서도 흐뭇했던걸로 기억한다.

-. 오컬트와 관련된 영화들의 생명은 악마가 어떻게 인간의 심약한 부분을 비집고 들어와 믿음에 의심을 품게하고, 인간을 고뇌하고 시험에 들게하는지에 대한 드라마와 악마적인 상상력을 어떻게 비쥬얼로 승화시키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엑소시스트야 말로 탁월한 영화다. 영화의 반 이상이 심심할 정도의 드라마로 채워져 있는 엑소시스트는 후반부의 클라이맥스를 향해서 악마와 빙의에 대한 소소한 에피소드와 함께 캐릭터 구축을 착실히 해나간다. 멋진 장면들이야 수도없이 많지만 볼 때마다 인간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섬찟한 느낌이 드는 리건의 spider walk 장면은 짧지만 정말 임팩트가 강하다.

-. 73년에 처음 발표되었을 때는 spider walk장면은 너무 섬뜩하다는 이유(?)로 삭제된 체 발표되었는데 2000년에 재개봉한 you've never seen 버젼에서는 메린 신부의 과거와 이 spider walk 장면 등이 추가되어 발표되었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재개봉시 삽입된 spider walk 장면 말고 윌리엄 피터 블래티의 원작소설에 더 가깝게 촬영된 장면이 있더라. (이 영상이 어느 버젼의 DVD에 삽입되어 있는지 모르겠네.) 첫번째 영상이 you've never seen 버젼에 삽입된 것인데 여기서는 몸을 뒤집어 계단에서 내려와 피를 토하고 장면 전환이 되는 반면 원작 소설에서는 리건이 몸을 뒤집고 내려와 긴 혀로 보모의 발목을 핥았던걸로 기억한다. 그러니 두번째 영상이 원작 소설에는 더 충실하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오면서 다시 몸을 정상적인 자세로 뒤집으려하다보니 박력이 좀 떨어진다고나할까. 어쨋거나 두장면 모두 기괴하기는 마찬가지. 멋진 장면이다. 


[재개봉시 삽입된 spider walk]


[원작 소설에 더 가까운 spider walk]

-. IMDB의 trivia를 보니 73년 개봉당시 삭제된 이 장면의 임팩트가 너무 아쉬웠는지 77년에 발표된 동일한 장르의 오컬트 영화인 Ruby에서 사용이 되었다. 예고편을 보니 정확히는 walk라기 보다는 요가자세 정도라고나 할까. 예고편의 파이퍼 로리를 보니 이 아줌마도 공포영화에 정말 잘 어울린다 싶다. 어쨋거나 유튜브는 광대하다.

[Ruby (1977)의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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