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불꽃푸른 불꽃 - 10점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창해
기시 유스케의 푸른불꽃은 계부와 동급생 살해라는 자극적인 키워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애절한 슬픔의 감성을 가득 담고 있는 소설이다. 자전거 타기와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슈이치는 어느날 예고없이 들이닥친 계부의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인해 자신을 포함하여 가족들이 행복한 나날을 빼앗기고 숨죽이며 살아가는 것에 분노한다. 평범한 일상이 불쑥 거대하고 달아날 수 없는 폭력의 고리에 던져지자 슈이치는 완전범죄를 꿈꾸며 계부를 살해하고자 한다.

소설 속의 슈이치는 완전범죄가 정말 있을까라고 끊임없이 자문하며 공부하고 또 공부하여 스스로 이것은 완벽하다(!)라고 생각한 뒤에 범행을 실행하지만, 이 슈이치라는 주인공이 결코 냉정하고 계산적이지 못해 성공하지 못한다. 슈이치가 여자친구인 노리코에게 '너는 사실은 여성적인 아이가 맞는거지?'라고 세뇌시키듯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가 살인이라는 범죄에 무감각해져 보일 때에도 읽는 사람은 오히려 더 안쓰럽게 바라보게 된다. 사실 슈이치는 –반복되는 살인 속에서-살인에 무감각해진 것이 아니라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그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가 저지르는 범죄의 잔상들이 더 안타깝고 크게 느껴진다. 그는 이미 범죄를 저질렀기에 그가하는 반성은 때늦은 후회이고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그 무한의 순환고리에 발을 딪었기에 빠져나갈길 없는 막막함에 가슴이 답답하다.

슈이치가 선택한 살인이라는 함정이 과연 마지막 수단이였을까라고 읽는 순간 함께 고민하면서도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이 느껴지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진 거인의 잠재하고 있는 숨막히는 존재의 폭력성에 잠식당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차라리 죽여버리는 것이 빠른 판단이었을 것이라고도 공감한다. 그래서 슈이치가 범행을 계획하는 순간부터 같이 나도 범죄에 동참하여 어떻게하면 완벽한 트릭을 구사할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되기 때문에 이 책의 흡입력은 굉장하다. 게다가 이녀석이 구사하는 범죄라는 것이 헛점 투성이 인지라 읽으면서 '아~ 언젠간 잡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되고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묘사를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년의 언어로 이야기 하는 '기시 유스케'에 대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기가 저지른 범죄의 무게와 분노의 깊이와 죄의 크기를 헤아릴 수 없었던 슈이치는 결국 분노와 함께 가장 뜨거운 푸른 불꽃처럼 파랗게 연소하고,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여운이 너무 많이 남아서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을 흘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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