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98년에 발표된 박기형 감독의 여고괴담은 죽은 학생이 9년 동안 학교를 다닌다는 전형적인 괴담에 학교에서 파생될 수 있는 모든 부조리함을 잘 쓸어담은 영화다.영화 속에 등장하는 선생 미친개나 늙은 여우가 학생들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방법이 과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체벌 뉴스나 교사의 성폭행 뉴스를 보면 과연 이런 설정이 지나치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 싶다.

여고괴담의 늙은여우는 무당집 딸이라는 이유로 진주를 차별하고 학생들을 이간질하여 결국 그녀가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미친개는 학교에서 목매달린 시체를 발견하고 놀랐을 학생들을 달래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고 소문 두려워하며 함구령을 내린다. 그리고 사랑의 매라는 교편을 붙잡고 여학생들 가슴을 쿡쿡 찔러댄다.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목덜미를 쓰다듬기도 하고.

출신성분과 성적으로 학생들을 차별하는 극단적인 면을 늙은 여우와 미친개가 보여줬다면 이미연이 맡은 은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불합리함을 못본척 넘어가는 차별의 암묵적 동조자를 보여준다. 그녀는 학창 시절 무당의 딸과 친하게 지내면 자신도 왕따를 당할까봐 결국 친구를 배반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 시킨다. 그녀는 진주와 놀면 선생님이 진주를 퇴학시킨다고 했기 때문에 배신이 아니라 친구를 위해서 였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도 왕따가 되기를 두려워했을 뿐이지 친구를 위해서 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의 죄책감은 그녀를 다시 학교로 불러들인다. 그렇지만 선생이 됐어도 무기력하고 자기합리화를 반복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성추행을 당하는 학생의 모습을 지켜보고도 그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자신에게 힘이 있으나 없으나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실천할 사람은 아닌 것이다.

학교에서 카메라를 한시도 돌리지 않는 여고괴담은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과 시험에 갇혀 극도의 폐쇄 공포증을 겪는 학생들을 보여준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2등 밖에 못하는 학생과 그것을 그녀의 잘못으로 돌리는 선생, 등수 차별로 친한 친구 사이를 갈라놓고 결국 자살하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답답함. 그러니 공부잘하는 학생은 서울대가면 공부 안할 거라고 다짐한다. 대학가면 공부안하려고 다짐하게 만드는 학교 교육. 그만큼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공포가 또 어디있을까.

여고괴담은 많은 캐릭터들도 생생히 묘사해서 공감을 얻기도 했지만, 살해장면의 박력도 여타 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깜짝 놀라게 하는 것만이 공포영화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어떤 영화들은 반성해야 한다. 이 영화의 살해장면은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를 연상시킨다. 비단 배경이 학교라서가 아니라 첫 살해 장면부터 어렵지 않게 서스페리아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강렬한 색채 미학을 선보였던 서스페리아에서 색깔을 뽑아낸 느낌이랄까. 잔혹함의 강도는 조금 다르지만 심장을 두드리는 박력은 건재하다. 두려움에 떨며 전화를 거는 선생이 무언가에 맞아서 쓰러지고 무언가에 의해 피를 흘리며 복도에서 질질 끌려가고 결국 교수형에 처하는 늙은 여우의 살해장면이 담긴 긴 오프닝과 흰 커텐을 휘감은 미친개 살해장면의 클로즈업된 찌르는 손과 무기, 흐르는 피는 명백히 다리오 아르젠토의 그것이다. 이태리 잔혹극과 한국식 괴담의 이종교배. 멋지다.

간단히 말하면 여고괴담은 그저 친한 친구 한명 사귀기 위해서 9년이나 학교를 다녀야하는 대한민국의 불쌍한 학생들에 대한 얘기이지만, 그것에 학교라는 사회가 갖는 부조리함을 요리조리 잘 담아낸 진정 즐겁고 씁쓸한 영화다. 여고괴담을 통해서 박기형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김규리가 맡은 지오의 대사로 축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란 선생님한테나 애들한테나 멍청하고 끔찍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마치 처참하게 죽은 시체를 보는 것 만큼이나...


덧붙여.
-. 결말이 다소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교실 전체가 피를 흘리는 비쥬얼을 선보이는데야 불만을 한개라도 토로할 이유가 없다.

-. 최강희, 김규리, 박진희, 윤지혜 같은 완소녀들을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여고괴담 시리즈가 만들어낸 매력 포인트.

-. 박기형 감독은 폭력써클 이후로 '사선에서'라는 영화를 찍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 영화 대체 어찌된건지 소식이 전혀 없다. 궁금.

제목: 여고괴담
감독: 박기형
배우: 최세연 (최강희), 김규리, 박진희, 이미연, 박용수, 윤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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