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브 디거그레이브 디거 - 10점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황금가지

다카노 가즈아키의 '그레이브 디거'는 하루밤 동안 벌어지는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다. 중세시대의 이단을 심판하던 고문관, 거꾸로 그들을 죽였다는 그레이브 디거의 전설. 일본의 도쿄에서 이 그레이브 디거가 고문관을 죽이던 방법으로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평생 악한 일만을 저지르던 야가미는 좋은 일을 한번 하고 새사람으로 태어나고자 골수 도너로 등록을 하고 내일이면 드디어 자신의 골수로 남을 살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하기 전날 연쇄살인에 휘말려 들게 되고 알 수 없는 단체로부터 추격을 받게 된다. 알리바이 때문에 경찰에 갈 수도 없는 야가미는 경찰과 기묘한 집단의 추격을 받으며 병원에 입원하려고 갖은 고생을 하며 추격전을 펼친다.

그레이브 디거는 쫓기는 야가미의 이야기와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된다. 야가미 쪽은 추격전의 박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수사하는 쪽은 미스테리의 진수를 보여준다. 매번 시점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생생히 살아있으며 사건에 관여하는 등장인물이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어찌나 잘 썼는지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레이브 디거는 사회파소설답게 거리의 살인이 실은 공권력과 연개된 정치집단의 음모였다는 결과를 내고 있는데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정부의 상위기관이 온갖 비리의 온실이었다는 것과 그들 집단내에서의 갈등도 심도있게 묘사되고 있다. 게다가 야가미와 경찰, 정체를 알 수 없는 집단의 세그룹이 벌이는 추격전은 그야말로 백미다. 달리고, 전철을 타고, 배를 타고, 수영을 하고, 모노레일의 외길에서 곡예를 하고 건물을 뛰어넘고 택시를 타고, 경찰과 레이싱을 벌이는 등의 추격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야가미는 정말 잘 빠져나가는 추격전의 달인인 것이다. 압권이다.

또 하나 이 책의 진수는 개개의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꽉 차인 틀안에서 연결관계를 맺고 있는 유기성에도 있지만, 진정한 묘미는 바로 '야가미'라는 캐릭터다. 야가미는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무수한 학대를 받으며 살아온 인물이고, 그로인해 저절로 나쁜길로 빠져든 악당이지만, 유머를 구사하는 능글능글한 캐릭터이다. 야가미는 가난한 여자아이들을 꼬셔서 오디션이라는 명목으로 코묻은 돈을 빼앗은 놈이고 유명 정치인의 성대모사를 하여 거액의 돈을 빼내는 뻔뻔한 사기꾼이고, 평생 주먹질로 나쁜짓을 해온 인물이지만, 그가 추격을 당하면서 자신이 했던 나쁜일을 독자에게 알려줄 때마다 그가 지금 왜 추격을 당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기도 하고 일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가 살인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위험을 무릎쓰고 도쿄 시내를 종단하는 목적은 자신의 골수를 기증하기 위함이다. 자신의 어린시절을 구원받기 위한 상징적인 행위로 골수 기증을 결심한 야가미는 죽음의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몸으로 뛰는 생생함이 펄떡펄떡 살아숨쉬는 결코 밉지 않은 캐릭터이다. 미모의 여의사에게 위로 한번 받고자 마지막에 그가 상상하는 작전은 책장을 덮으면서 미소가 잔뜩 번지게 할만큼 매력적이다. 그러니까 나쁜짓을 하면서도 이건 절대 용서못한다는 원칙도 가지고 있는 '공공의 적'의 강철중같은 캐릭터라고나할까.

잔인한 살인행위들, 그리고 밝혀지는 음모의 실체, 정치권과 보안부의 유착관계, 사이비 종교 단체 등의 이야기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달필로 책 속에서 춤을 춘다. 책의 분위기만 잘 유지해 준다면 영화화해도 수작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야가미의 통쾌한 이 한마디가 아직도 가슴을 울린다. '거리의 악당을 우습게 보지 말라구!'라는....

덧붙임.
-.그레이브 디거를 읽고 아직 밀려있는 책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13계단을 바로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이런것이 작가의 매력인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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