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사소한 감정이나 사건들을 극단으로 끌고가서 그 소동의 기저에 있는 진짜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이유들이 거창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사는 곳은 대개 비슷하고 사람이 분노하고 화내는 이유는 언제나 유치하고 사소한 감정들일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 군대라는 곳도 공포영화가 갖고 있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계급에 의해 나뉘어져 있으므로 하급에서 억눌렸던 감정들이 상급으로 올라갈수록 쉽게 표출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욱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만큼 혈기왕성한 20대의 불특정 다수가 모여 있고 계급이 깡패라는 군대의 특성상 고참이 될수록 욕설을 동반한 자기 감정의 표출에 충실해진다.

상병이나 병장이 되어 분대장이 되면 책임감이 '부여'된다. 능력에 의해 혹은 자의에 의해 짊어진 책임감이 아니라 단순한 서열의 순위와 시기, 계급에 의해 부여된 책임감이므로 가끔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 없음을 욕설과 얼차려로 풀어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경우 소대의 분위기는 살벌해지고 매일 저녁 폭력이 자행되기 일수이고, 훈련이라도 나가면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

만약 이런 중압감을 아랫사람들과 분담할 수 있다면 본인의 스트레스도 감소할 것이고 분위기도 좋아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나를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자존심 때문이다. 나도 그런 것을 느꼈고. 이런 상황에서 더욱 슬픈 것은 그것을 분담할 수 있는 동료 혹은 아랫사람이 없을 때다. 지독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휘두르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 모두에게 말이다.

요즘 일이 피곤하니 자꾸만 짜증이 늘어간다. 나도 바보스럽게 일과 책임감을 분담하는 것에 서투르다. 다른 사람을 시키느니 내가 하고 말지라고 살아오니 그런게 쉽지가 않다. 그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침부터 혼자 회사 옥상에 올라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니 공포영화에서 군대라는 연상이 이어지더니, 난 참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라는 결론까지 와버렸다. 방법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행하는 것은 쉽지가 않으니 이제부터라도 자존심을 조금만 덜어내보자라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메운다. 이래놓고 또 혼자하겠지. 바보야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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