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피부차가운 피부 - 10점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유혜경 옮김/들녘(코기토)

영국으로부터의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해 온 남자가 아일랜드의 독립 후 동료들이 권력을 잡고 영국이 한 것과 동일하게 국민들을 압제하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껴 방황하다 도피성으로 남극 주변의 한 섬에 1년동안 기상관으로 취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청년이 도착한 섬은 불행하게도 반인반어의 생명체가 살고 있는 곳이다. 흡혈귀처럼 밤에만 활동하는 그들은 해가 사라지면 해안에서 기어올라와 그를 잡아먹기 위해 끊임없이 공격한다. 그는 낮에는 전쟁을 준비하고 밤에는 그들을 도륙하는 생활을 반복하며 점점 미쳐간다.

-.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이라는 스페인 작가의 '차가운 피부'는 러브 크레프트의 소설에 좀비 영화의 메타포를 섞어놓은 듯한 소설이다. 주인공 남자는 생각할 틈도 없이 미지의 적과 매일밤 전쟁을 치른다. 그의 동료라고 할만한 전직 기상관은 이 의미없는 살육전을 즐기는 듯 하다. 그는 폭력 자체가 목적이 되는 전투에 빠져버린 인물이고 그 폭력을 중지시킬 기회가 왔음에도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에 화해의 제스쳐를 묵살한다.

-. 아일랜드인인 '나'는 영국군의 모자를 쓰고 있을 때 거울을 보고 영국군 모자를 쓴 내가 보여요라고 대답을 하다 그냥 '내가 보여요'라고 말한다. 제복은 사람을 단순하게도 하기도 하고 그럼으로써 무서움을 모르고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하기도 한다. 옷이라는 껍데기 하나만 벗기면 모두 같은 인간인데 쉽지만 어려운 진리다.

-. 주인공인 '나'는 미지의 크리쳐를 애완동물처럼 키우고 수간을 행하던 동료를 역겨워 하지만, 괴물이라고만 생각하던 크리쳐의 차가운 피부를 만져보고 온기는 없지만 아름다운 크리쳐의 몸에 빠져들게 된다. 그 후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생각을 바꿔나간다. 지금까지의 살육전이 단지 서로를 너무 몰랐기 때문에 무지가 두려움과 공포로 바뀐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참으로 많은 희생이 있었다. 결국 우리 세상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차가운 피부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결국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아가는 동일한 무게의 존엄성을 가진 생명체들이다. 누가 누구를 함부로 죽일수 있겠는가
 
-. 결국 차가운 피부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로 전환되고 그것이 폭력을 낳고 또다시 폭력이 전환되는 과정을 반인반어의 크리쳐를 살육하는 과정을 통해 표출해낸 짜임새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듯 짧은 문장으로만 쓰여져 있어서 읽기도 편하고 흡입력도 강하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굉장한 물건이 나오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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