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인스마우스의 그림자'는 한남자가 공포의 전설과 괴담이 무성한 기괴한 분위기의 인스마우스라는 마을에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이 소설은 치밀하고 집요한 심리묘사를 통해 공포 분위기를 구축해 나간다. 즉 인스마우스에 도착하기까지 그에 얽힌 소문들과 마을의 배경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지겹도록 반복하여 궁금증과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반면 영화 데이곤은 러브크래프트가 지향하고 있는 지점과는 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영화다. 심리적인 긴장감보다는 유머를 앞세운 잔혹함으로 승부한다. 낯선이가 낯선곳을 (호기심에) 방문하여 겪게되는 이야기는 사고를 당해 우연히 도살자들이 사는 마을에 머물게 된다는 슬래셔스러운 이야기로 바뀌어졌다. 어쩌면 스튜어트 고든은 러브크래프트의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으나 '좀비오'에서 그랬듯 브라이언 유즈나의 입김으로 일정 부분 포기했는지도 모르겠다. 둘이 있을때 최고의 효과를 만든다고 하지만 데이곤은 확실히 좀 부족한 영화다.

직접적인 살인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소설에 비해 영화는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을 연상시키는 인피가면과 사람의 가죽을 통째로 벗기는 등의 장면이 등장하여 잔혹한 영화라는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소설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분위기를 평범한 것으로 끌어내린다. 반인반어의 크리쳐가 주는 기괴함을 인피가면으로 덮어버리고 마지막에 괴물들의 모습을 한방에 보여주는 것을 보면 분위기 조성보다는 보여주기에 집착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고유의 요소를 포기할거면 허버트 웨스트의 리에니메이터처럼 아예 유머러스하게 만들었어야 하거늘 데이곤은 웃기지도 그렇다고 심각하지도 않은 좀 어정쩡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스튜어트 고든은 마스터즈 오브 호러의 '검은 고양이'도 나쁘지 않았고 올해 '스턱'으로 공포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고하니 기대가 된다. 앞으로 스페인으로 간 브라이언 유즈나도 판타스틱 팩토리에서 그의 최고작품인 소사이어티나 리턴 오브 더 리빙데드3를 뛰어넘는 작품을 발표해주었으면하고 간절히 바란다. 감독으로서든 제작자로서든 뭐든 간에... (다크니스는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나면 우시아 역을 맡은 마카레나 고메즈라는 배우가 머리에 콕 박힌다. 약간 언발란스하게 생겼지만 유러피안 특유의 그런 야시시함이 듬뿍 묻어난다고 할까. 유럽의 공포영화를 보면 언제나 여배우들에게 푹 빠져버리는데 찾아보면 작품들이 별로 없고 구하기도 힘들며 형편없는 영화들도 많아서 이 또한 아쉽다. 유럽의 공포영화 여배우들은 언제나 나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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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데이곤 (Dagon, 2001)
감독: 스튜어트 고든
배우: 에즈라 고든, 마카레나 고메즈, 프란치스코 라발, 브렌든 프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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