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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예도라는 이름으로 더욱 친숙한 허먼 여우 감독의 에볼라 신드롬은 일말의 주저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뼈와 살을 발라 만두를 만들어내던 '팔선반점의 인육만두' 3년 뒤에 만들어진 걸작이다. 허먼 여우 감독의 영화가 국내에 '팔선반점의 인육만두' 빼고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인육만두에서 보여준 불쾌함으로 인해 그의 영화는 한번이상 보고 싶지 않은 영화가 돼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도 인육만두를 보고 이 감독은 이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편견에 빠져 다른 영화는 애초에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지만, 에볼라 신드롬은 그런 생각을 단 번에 날려주는 영화였다.

홍콩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남아프리카 어느 중국인 식당에 숨어든 카이. 사장과 카이는 백인들이 고기를 비싸게 팔기에 싼 값으로 고기를 구하고자 줄루족이라는 원주민을 찾아간다. 하지만 이곳은 에볼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었고 사장은 고기를 싣고 후다닥 빠져나온다. 돌아오던 중 코끼리 떼를 만나 차가 고장나게 되고 차에서 잠깐 내린 카이는 강가에 줄루족 여인이 쓰러지는 것을 발견하고, 도움을 주려다가 강간한다. 카이는 이 여인에게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만, 죽지 않고 '천만분의 일'의 확률로 존재한다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숙주가 된다. 일반 범죄영화처럼 진행된 영화는 여기서부터 속도를 붙여 거침없이 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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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에 감염되어 끙끙 앓고 있는 카이를 사장부인은 식당에서 죽으면 곤란하니까 버리려고 한다. 그러다 거꾸로 카이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 때 들어선 사장과 함께 살해당하는데, 카이는 사장부인의 연락을 받고 온 조카까지 죽이게 된다.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팔선반점처럼 그들을 솜씨좋게 살을 발라 햄버거로 만들어 버린다. 흥건하게 피가 고인 바닥을 청소하며 카이는 '죽어서도 일 시키는 개새끼들'이라는 명대사를 읊조린다. 사실 사장과 그 부인은 일 잘하는 카이를 저임금에 홀대하며 부려먹고 있었다. 그래서 카이가 그들을 죽이는 심정이 공감이 되고 권력자가 부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물리적인 폭력으로 대응하는 카이의 모습에서 단순 고어영화였던 팔선반점의 인육만두는 에볼라 신드롬에서 블랙코미디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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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를 숙주로 해서 퍼져나간 에볼라 바이러스는 남아프리카에 서서히 퍼지게 되고 카이는 사장이 숨겨둔 돈을 훔쳐 홍콩으로 돌아온다. 돈을 펑펑 뿌리며 사창가의 창녀들과 놀아나고 창녀들로 시작하며 이곳저곳에 퍼져나간 에볼라 바이러스는 홍콩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후에 경찰에 덜미가 잡혀 인질극을 벌이는 카이는 자신은 에볼라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며 경찰과 사람들에게 피와 침을 뱉으며 도주한다. 그 와중에 인질이었던 어린아이는 목이 졸려 죽어버리고 카이는 '자기 잘못이 아니야'라며 그냥 버리고 간다. 시민들에게 '에볼라야~!'라고 포효하며 거리를 질주하던 카이는 온 몸이 불에타고 차에 치인 뒤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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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조용히 숨어있는 연쇄살인범을 에볼라 바이러스로 은유하여 펼쳐지는 이야기도 재미있고,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나 상황이 역전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카오스의 상황을 B급무비의 정서로 환기시켜 정말 갈데까지 나가버리는 대단한 영화다. 어린아이마저 만두를 해버리는 인육만두의 금기를 깨는 정서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경찰들은 카이가 뱉은 피와 침을 소독하면서 다니는데 그 와중에 강아지가 카이의 침을 빨아먹고 아이가 강아지와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으며 '아이와 강아지'가 함께 매개체가 되어 에볼라 바이러스는 다시 사회속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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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육만두에서 신경과민인 듯 눈을 부라리며 연기했던 황추생은 이번 영화에서도 카이라는 사이코패스 인물을 정말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그때그때 필요한데로 행동하고 거침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카이를 황추생만큼 잘 연기하는 인물도 없을 듯 하고 연쇄살인범을 허먼 여우만큼 잘 그리는 영화감독도 없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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