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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를 죽도록 무섭게 만들어 보아요'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이 영화는 굉장히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영화지만 모든 순간, 모든 장면마다 신경을 갉아먹는 기괴함과 무언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끈끈한 긴장감을 안고 가는 재미있는 영화다.

정신병 치료를 끝낸 제시카는 남편 던컨과 친구 우디와 전원생활을 꿈꾸며 시골로 오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살게 될 집은 아비가일 비숍이라는 여인이 빠져 죽었던 강 위에 세워진 집이며 마을 사람들은 비숍이 뱀파이어가 되어 아직도 나타난다는 둥의 소문을 믿으며 새로 이사온 그들에게 적대적인 시선을 보낸다. 한편 제시카의 집에는 가출소녀가 기거하고 있었는데 제시카의 무리가 이 소녀를 받아들이면서 그들 사이에 애증이 섞인 묘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제시카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Let's scare Jessica to death는 시종일관 모호하다. 그녀는 환청과 환각 증세를 보였던 과거의 병력으로 인해 그녀가 지금보고/듣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여력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을 환각이라고 단정해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그 사실을 숨긴다. 이렇게 그녀만의 세계라고 판단한 순간 다른 인물도 그녀가 환각이라고 생각한 인물을 보게 된다. 결국 환각은 현실인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영화는 이런 상황을 싱거울 정도로 가볍게 넘겨버린다. 그와중에 제시카만 안절부절했다가 안심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독특한 긴장감을 획득한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울리는 저음의 음향효과와 그녀를 지켜보는 카메라의 불안정한 각도, 그리고 그녀의 머리속에서 하울링으로 낮게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현실과 환각의 경계선을 지워버린다. 그래서 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실제 있었던건지 아니면 그녀만의 착각인건지 확실하지가 않고 영화는 이런 모호한 공기를 제시카의 나레이션으로 끝맺음으로서 아무것도 밝히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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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정말로 시골에 요양온 부부와 친구가 그 지방의 귀신 혹은 뱀파이어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 일수도 있고, 만우절이라는 영화처럼 친구와 남편이 짜고 그녀를 죽이려는 연극이었을수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가 제목과 가장 어울린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죽은자들이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채 겪는 저 세상의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차는 영구차이고 그녀가 이 마을에 들어서면서 제일 처음 들른 곳은 마을의 공동묘지이다. 그리고 그녀는 묘비를 본떠서 그녀의 방에 장식해 둔다. 게다가 마을의 사람들도 이미 처음부터 모두 죽어버린 사람들이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영화는 이 모든것을 맞다고도 틀리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모호하고 그 모호한 깊이만큼이나 기괴하고 재미있다.

Let's scare Jessica to death는 전통적인 오컬트면서 슬래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우스호러와 같은 인상도 풍기지만 뱀파이어가 등장하고 뱀파이어 영화이기도 하지만 이빨로 무는 것이 아니라 칼로 목을 그어 피를 빨아먹고, 뱀파이어라고 생각하기에는 좀비와 같은 인상을 풍기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등의 익숙한 영화의 전형성을 거부한다. 본래 코미디로 쓰여진 각본을 감독이 호러영화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아무튼 이 영화 기괴하고 독특하고 재미있다.

첨언.
-. 제시카를 연기한 조라 램퍼트의 연기가 발군이다. 결혼생활을 뺏기지 않으려는 여자의 심리와 자신의 병을 숨기려는 표정, 행복을 가장하려는 그녀의 표정은 영화에 확실한 힘을 실어준다.

-. 캐나다 제목은 what lies beneath를 연상케하는 '호수 밑의 비밀'(실제로 what lies beneath와 비슷한 장면도 많다.)이었고 '누가 샘 도커를 죽였나'라는 제목도 있었는데 이 제목은 정말 생뚱맞다. 샘 도커는 마을의 고가구 주인인데 잠깐 나오는 조연일 뿐 아니라 영화상 그렇게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하는 인물도 아니기 때문. Let's scare Jessica to death라는 제목이 역시 압권이다.

제목: Let's scare Jessica to death (1971)
감독: 존 핸콕
배우: 조라 램퍼트, 바톤 헤이먼, 케빈 오코너, 그레첸 코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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