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골의 꿈 - 전2권 세트광골의 꿈 - 전2권 세트 - 10점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손안의책(사철나무)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세계관이라고 하면 '세상의 모든 한 점은 계속해서 확대해 나가면 그 안에 인간 혹은 또다른 생명체가 우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사회를 이루고 생활하고 있을거라는 것'이다. 그것은 지우개의 한귀퉁이일 수도 있고 볼펜 속에 담겨진 잉크 한방울 속일 수도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볼 수 있는 미시적인 영역들은 점차 확대되었고 그에 따라 마이크로에서 나노미터로, 전자/원자에서 그보다 작은 쿼크의 범위까지 넓어졌다. 이와 같이 과거에 정의됐던 개념들은 하나하나 무너졌으며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생각들은 지구가 네모가 아님을 깨달았듯이 또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점을 확대했을 때 그 속에 또다른 인간이 살고 있다해도 그닥 신기한 노릇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세계가 무한정 반복되는 매트릭스를 좋아하고 은하계라는 것이 작은 구슬에 불과하다는 맨인블랙의 결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가끔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사춘기 때 자아에 대해 인지하게 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만 그 시절이 지나 사회에 내던져지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런 물음들은 조금씩 희석되어지고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혹 생각하더라도 그런 철학적인 물음에 메달리고 있을만큼 현재의 생활은 한가하지가 않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종교를 믿음으로서 누군가 '만들어' 놓은 세계관에 자신을 맞춤으로서 그런 물음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과학에 기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세계의 죽음이라는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에 대해서는 시침 뚝 떼고 살아간다. 가끔씩 이런 생각을 떠올리면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거라 생각이 되기도한다. 어차피 나와 함께 이 땅에 발을 딪고 있는 세계의 어떤 한 사람도 사람의 사후가 어떤 것인지, 사후가 없는건지, 있다면 죽은 후의 나는 살아있을 때의 '나'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서로들 시치미를 떼고 살아간다. 모르는 것(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서 말이다. 하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모르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

방석탐정 교고쿠도 시리즈의 이야기는 정확히 이런 세계관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교고쿠도는 오래된 책을 판매하는 고서점의 주인이자, 빙의된 인간에게서 귀신을 쫓아주는 퇴마사에서 제사장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귀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인식하는 범위를 넘는 것에 대해서 초자연적인 현상 혹은 귀신이나 신 혹은 요괴라는 범주로 몰아 넣을 뿐이지 사실 세계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없다'라는 것이 그의 세계관이다. 그러므로 그가 행하는 퇴마의식은 종교에 빚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잠재의식 및 가치관을 바탕으로 트라우마를 인지하게 하고 그것을 인식시킴으로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괴담에서 출발하는 교고쿠도 이야기는 항상 과학이나 심리학등의 학문적인 결말로 끝이 난다. 이와 같이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괴담과 과학의 만남은 교고쿠도 시리즈의 최대 매력점이다.

우부메의 여름과 망량의 상자를 거쳐 발표된 방석탐정 교고쿠도 시리즈의 세번째 이야기인 '광골의 꿈'도 이런 세계관 속에서 펼쳐진다. 광골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광골이란 우물에 갇혀있는 원한이 서려 있는 뼈를 말한다. 아케미에게 어느날 8년전에 자신이 목졸라 죽이고 목을 잘라버린 남편의 혼령이 나타나게 되고 그녀는 그를 다시 한번 목졸라 죽이고 목을 베어버린다. 하지만 다음날 그는 또 나타나고 그 학살 행위를 반복하게 되고 초조해 한다. 이와 관련하여 바다에 금색 해골이 등장하면서 사건이 복잡해 지기 시작한다. 정말 여러가지 사건이 등장하고 그것이 결국 하나로 뭉치면서 사건이 해결되는데 사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은 사건이 너무 많이 등장하는데에 비해 독자가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불충분하여 추리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부족한 작품이다. 독자는 그저 책 속의 교고쿠도 이외의 모든 인물들처럼 그가 설명하는 방식을 그냥 따라갈 수 밖에 없다. 또한 일본의 여러 괴담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 생경한 용어들이 너무 많이 튀어나오므로 중간에 맥을 놓치게 되어 '읽는 재미'를 잃을 수 있는 여지도 있지만 괴담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과학을 바탕으로 한 추리소설로 엮어나가는 작가의 역량이 탁월하여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을 것이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은 호러적인 요소가 풍부한 괴담이야기면서 학문적으로도 배울 가치가 있는 흥미로운 요소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광골의 꿈도 정확히 그러한 소설이니 차분히 읽어보길 권한다.

첨언.
-.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망량의 상자'였다. 이 망량의 상자라는 것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올만한 어이없는 것이어서 그 발상에 정말 탄복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주석이 너무 많아 읽는 흐름이 끊긴다면 95% 정도의 주석은 읽지 않고 넘어가도 줄거리를 이해하는데에 큰 무리는 없으니 생략해도 좋겠다. 그리고 그 많은 주석을 다 읽는다고 하더라도 어지간히 괴담이나 일본 역사에 관심이 없다면 아마 다 읽고 나서 단 한개의 주석도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렴 어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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