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 10점
이종호 외 9인 지음/황금가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추천할 때는 항상 추천이 욕이 되어서 되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왜냐하면 같은 공포장르를 좋아하더라도 그 속에서도 공포의 하위 장르에 대한 다양한 취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리언셀러클럽의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은 그러한 우려를 깔끔히 날려버리고 한마디로 강추하게 만드는 정말 '재미'있는 모음집이다.

이종호 작가를 비롯하여 10명의 호러작가들이 쓴 단편들은 긴장감이 넘치는 스릴러에서 원시적인 잔혹함이 느껴지는 슬래셔, 작은 소재로 범지구적인 인간의 계급적 이야기를 다루는 SF,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게 하는 잔혹코미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을 빌어 재치가 번뜩이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책의 타이틀이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 '한국작가'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적인' 공포문학 단편선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의 소재들은 마치 신문의 이곳저곳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는 기사들을 공포라는 외피를 씌워 내보이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공포의 상황에 현실적인 공감대를 자연스레 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살인이라는 비교적 직접적인 이야기로부터 줄기세포를 위시한 인간복제에 대한 과학적인 영역까지 확장이 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켜 주고 있어 더욱 재미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짜증스러운 현실을 '놈'이라고 일반화한 난폭운전자에게 쏟아부어 흡입력있게 쏟아내고 있는 김종일님의 '일방통행', 헬레이져의 좀비 괴담버젼이라고 부를만한 신진오님의 '상자', 폭력의 대물림을 살인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로 날 것의 이미지와 함께 소름끼치게 전달하는 우명희님의 '들개', 어느날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우등한 집단에게 지배를 받는 정치적인 은유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는 SF 단편인 장은호님의 '하등인간', 의처증과 해리성장애라는 가장 일반적이고 평범한 소재를 유려한 문체로 보여준 이종호님의 '아내의 남자', 그리고 이 단편집의 가장 재미있고 한마디로 물건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인 박동식님의 '모텔 탈출기' 등 10편의 단편이 모두 중간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어 정말 만족할만한 모음집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귀신을 중심으로 한 '괴담집'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는 공포'소설' 모음집이라는 면에서 아마도 이 밀리언셀러클럽의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은 책 권말에 있는 조성면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이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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