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캐비닛 - 10점
김언수 지음/문학동네

캐비닛은 심토머라 불리우는 돌연변이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 입안에 도마뱀을 키우는 사람, 시간을 통째로 도둑 맞는 사람,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자웅동체의 사람 등등 어떤 사람들은 돌연변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초능력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작가 김언수는 이런 심토머들을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인류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인간미 같은 소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그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거꾸로 말하면 현재의 인류에게는 그런 것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캐비넷에 등장하는 이 돌연변이 인간들은 처음에는 그 자체로 신기하고 재미있게 보이지만, 읽을수록 독자는 돌연변이 인간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되고 이건 소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로 천천히 방향을 선회한다.

괴물같은 소수자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저 그들이 신기해서라기 보다는 대체로 그들의 비주류의 삶에 공감하고 설사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해있지 않더라도 마음 속 일부분은 절름발이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심적 동조는 때로는 동정과 연민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한 희망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

하지만 캐비닛은 농밀하고 진지하지만 경쾌한 언어로 let it be라는 삶의 지혜를 쏟아낸다. 방관하라는 말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것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무엇인가를 해야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무책임하다고? 삶의 폭력성은 인정하고 바라는 것 보다는 이해한다고 착각하며 간섭하는데서 나온다. 인정하는 것과 외면하는 것은 혹 행위가 결여된 것일지라도 분명 다른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불가해한 것이므로 인정을 한다는 것이 인생을 조금은 풍요롭게 만들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첫걸음이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후의 미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캐비닛은 엑스파일에나 등장하는 돌연변이들로부터 이런 얘기들을 들려준다. 심사자들은 종반부의 섬뜩함과 잔혹함을 생경하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했지만, 캐비닛이 시종 은유하고 있는 현실의 폭력성을 이런 결말보다 잘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 잔혹한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가? 만약에 종반부의 설정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전까지의 돌연변이 이야기가 삶을 고급스럽게 은유하고 있다면 종반부는 너무 직설적이어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하나의 책이나 영화 속에 웃음과 감동, 연민, 공감 등의 키워드가 모두 들어있는 종합선물세트라고 하면 대개는 그 어느하나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김언수의 캐비닛은 배꼽을 잡고 포복절도할 유머와 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할 잠언과 같은 문장들이 함께 섞여있는 그야말로 발군의 작품이다. 김언수라는 이름을 체크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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