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컷B컷 - 10점
최혁곤 지음/황금가지

한국형 스릴러라는 문구를 달고 나온 최혁곤의 B컷. 스릴러와 한국형은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최근 세븐 데이즈가 히트를 치기는 했지만, 국내 스릴러 영화, 그러니까 고부의 갈등 같은 가족적인 심리전이 아니라 킬러와 형사가 추격전을 벌이는 형태의 한국 스릴러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어서야 영화 쪽에서는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스릴러 장르물이 나오기는 했지만, 소설로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한개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형 스릴러?라는 물음표와 함께 자연스럽지만 두 단어가 만났을 때 느껴지는 생경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B컷은 이런 우려를 단번에 기우로 만들어 버렸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서울이라는 공간이 담고 있는 쓸쓸한 정서-교통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이웃들끼리 죽일듯이 싸우는 공기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주하지만 서로에게 모두 타자가 되어버린 인물들-를 담고 있고 그것이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기인한 것이기에 개인적으로 매우 마음에 들었다.

소설은 추적당하는 여자킬러와 추적자인 퇴물형사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보여준다. 챕터별로 짧게 진행되는 개개의 에피소드는 스피디하게 진행되어 지루함을 느낄틈이 없으며 그 병렬의 구조가 교차하는 순간, 즉 추적자와 피추적자가 조우하는 클라이막스에서 한껏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둘은 모두 불행한 과거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키워드를 통해서 보여준다. 과거의 어떤 시점이 아닌 현재를 배경으로 롯데리아니 장동건이니 태풍이니 하는 단어들을 사용하고 주변에서 흔히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사건사고들을 배경에 넣음으로써 쉽게 감정이입을 일으킨다. 우연한 기회에 킬러가 되고 그를 이끄는 카리스마 강한 지도자를 만나 킬러가 되는 소녀나 소통에 문제가 있는 무능력한 형사의 모습은 많은 마피아 영화나 느와르 영화에서 보여지던 클리셰를 답습하고 있지만, 그 고루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은 역시 작가의 능력이다. 텔로미어에 관한 이야기의 중심사건이나 반전은 그다지 충격적이진 않지만 한국을 넘어 미국과 중국을 넘나드는 장소의 방대함은 디테일하게 잘 묘사되어 국내소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참신함이 느껴진다. 대개 우리나라 소설이나 영화는 장소가 커지면 그 규모에 짓눌려 현실성을 잃어버리곤 했는데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오히려 그 장소가 국내의 익숙한 지형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디테일하게 잘 묘사가 되어 있다. 그래서 B컷을 영화로 만들면 어쩌면 의외로 소소한 영화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해외 로케라고 해서 거대함만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가 아닌 이상 외국의 어떤 뒷골목을 찍더라도 그 나라의 분위기는 충분히 전달이 되기 때문이다.



쫓는자와 쫓기는 자의 '고도의 심리전'은 문자 그대로 머리를 쓰고 서로를 피해가는 이성을 지칭하는 것 보다는 서글픔과 불행을 공유하는 감성의 심리전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옳다. 그래서 어쩌면 머리싸움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우울함과 외로움을 선천적으로 짊어지고 있는듯한 인물들이 그보다 더 아래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야기는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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