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유에선지 1년 가까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의 사내 트레버 레즈닉. 그는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자신을 음모로 희생시키려고 한다는 불안을 겪는다. 집에 강도가 들었는지 물건이 바뀌어 있기도 하고 자신이 해 놓은 메모의 내용도 변해있고, 자신의 실수로 회사 동료가 팔을 잃는 사고를 당하지만 그는 아이반이라는 직원 때문이었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는 회사에서 쫓겨난다. 이제 그는 자기 스스로 음모를 밝히려고 노력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의 등장, 개연성 없을 듯한 캐릭터들의 파편적인 나열, 시간을 뒤섞어 놓은 듯한 화면을 가진 영화 머시니스트는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의 속시원한 반전 설명만 빼면 말이다. 린치 영화였으면 별다른 설명없이 모든 인물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초현실적인 공간에 그냥 갇혀버리고 말았겠지. 그러니까 머시니스트는 한 남자의 악몽 같은 영화다. 건조한 화면과 단조로운 기계공의 생활, 그리고 언제 기계속으로 빨려 들어가 신체를 절단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한 기운, 1시30분이라는 같은 시간속에 허우적거리는 악몽이다. 그리고 그 악몽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은 브랫 앤더슨 감독의 연출도 톡톡히 한 몫 하지만 등장하고나서 1초만에 관객을 사로잡아 버리는 크리스찬 베일의 깡마르다 못해 실수로 건드리기라도 했다가는 정말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주는 해골 몸매다.

185cm의 키에 81kg에서 54kg으로 27kg 감량을 한 크리스찬 베일의 모습은 흡사 CG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45kg까지 감량 하겠다는 크리스찬 베일을 제작사가 건강을 이유로 말렸다고 하니 거기서 더 감량했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참치 한캔과 사과 한쪽으로 다이어트를 했다는 크리스찬 베일의 모습에 극중 그의 여자친구들은 말한다. '당신 거기서 더 마르면 진짜로 죽을지도 몰라요'라고. 머시니스트는 완성도가 어떻다를 떠나서 인간의 마른 몸이 보여줄 수 있는 스펙타클한 광경에 그냥 입이 떡 벌어지는 영화다. 그런데 분위기도 죽여주고 재미까지 있으니 그저 추천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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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 브랫 앤더슨의 세션나인은 참 괜찮은 영화였다고 기억하는데 대체 무슨 내용이었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난 김에 한번 찾아봐야겠다.

-. 제니퍼 제이슨 리를 보면 언제나 '조지아'가 다시 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정작 지금까지 조지아는 한번 밖에 못봤다.

-. 다양한 외국어를 습득하면 반전영화를 볼 때 스포일러를 습득할 우려가 있다. 체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자마자 '니가 범인이구나' 했을테니. 물론 나는 체코어를 모른다.

제목: 머시니스트 (The machinist, 2004)
감독: 브래드 앤더슨
배우: 크리스찬 베일, 제니퍼 제이슨 리, 아이타나 산체스 기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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